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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0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5-07-20 조회수 : 95

연중 제16주일

 

 

거리에 돈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할까요? 아마 돈을 줍기 위해 온 힘을 쏟을 것입니다(돈 주인에게 돌려주든 아니면 자기가 갖기 위해서든).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나뒹구는 돈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돈 욕심이 전혀 없는 착한 사람들만 사는 곳일까요? 아닙니다. 돈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나뒹굴어도 아무도 줍지 않았고,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치우듯 쓸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땔감으로 화폐를 사용합니다. 빵 한 덩어리를 사기 위해 돈을 수레 가득 싣고 가야만 합니다.

 

아프리카 후진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가장 선진국이라고 하는 독일의 옛날 모습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패해 이후, 독일 정부는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했고, 그 결과 물가는 전년 대비 1조 배 이상 폭등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혼란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극단주의 세력의 등장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나치 정권의 집권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혼란은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나만 잘되고, 안정적으로 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평안할 때 나도 평안할 수 있었으며,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사회에서만 나 역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기심과 욕심. 이를 없애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시작은 어디서 해야 할까요?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나’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입니다. 그리고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했지만, 그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예수님께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라고 마르타가 말합니다.

 

마르타가 처음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 들일 때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평화가 깨집니다. 자기를 돕지 않고 주님 발치에 앉아 있는 여동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평화가 깨진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집에 모신 것은 여동생이 아닌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불편함을 따질 것이 아니라, 모두가 평안함을 따져야 했습니다. 자기의 불평등을 따질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따져야 했습니다. 그래야 혼란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야단치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사실 애정과 부드러움을 담은 부르십니다.

 

함께하는 마음에서만 진정한 평화 기쁨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의 불편함, 자기의 불평등만을 따지다 보면 결국 자기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칭찬은 평범한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다(막심 고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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