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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7-28 조회수 : 77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마태오 13,31-35 
 
왜 비유를 통하지 않고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을까? 
 
 
혹시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나 그가 남긴 말 한마디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마치 내 이야기처럼 곱씹고 또 곱씹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혹은 한 위인의 일대기를 듣다가, 그 사람의 삶이 통째로 내 마음에 들어와 나의 생각과 방향을 바꾸어 놓는 그런 체험 말입니다.
위대한 사랑을 품은 이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잘 쓰인 이야기, 즉 ‘비유’가 됩니다.  
 
오늘 복음의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유는 비유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삶으로 이 비유를 증명해내면 그것은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가 되고 누룩이 되셔서 진리로 보여주셨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렸던 임진왜란의 바다로 가봅시다.
영화 ‘명량’은 당시의 절망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133척이 넘는 왜군 함대 앞에 남은 것은
고작 12척의 낡은 배. 모두가 공포에 질려 더 이상 나아가기를 주저합니다. 
 
이순신에게 고대 병법서인 『오자병법』의 구절인,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진리입니다.
그러나 다른 장군들은 그 진리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감히 싸우러 나서지 않습니다. 
 
이때 이순신 장군 혼자만이 홀로 적진을 향해 노를 젓습니다.
그리고 홀로 수많은 적과 싸워 이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때 다른 장군들에게도 그 말씀이 진리로 다가옵니다.
그러자 그들도 실천할 힘이 생깁니다.
이순신 장군 스스로 진리를 비유로 드러낸 것입니다.
그 씨앗은 그들의 내면에서 순식간에 자라나,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들도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함께 달려들자, 수많은 일본 배들이 줄행랑을 치고 파괴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 스스로 작은 씨앗이 되셨고 많은 이들의 그늘이 되어주셨습니다.
땅으로 내려오셔서 안식일 법을 어긴다고 나무라는 바리사이들 앞에서 제자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도 그러한 삶이 행복인 것을 믿고 자신들도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힘든 이들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때 참으로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느낍니다. 
 
누룩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하느님이시자 스승이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서로 자신들이 높다고 주장하던 제자들의 마음이 누룩으로 부푼 빵처럼 부드러워졌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양식이 되어주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 실현된 비유를 보며 그들은 하느님 나라의 참 진리를 믿게 되고 실천하는 존재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진리는 실천된 비유로만 전달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하지 않고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말이 이런 뜻입니다.  
 
5세기의 로마, 당시 로마는 끝없는 전쟁과 정치적 암투, 도덕적 타락으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노르치아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젊은이, 베네딕토는 그 안에서 깊은 회의와 영적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대로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서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수비아코의 한 동굴로 들어갑니다. 
 
그는 그곳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3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직 하느님과 단독으로 마주하며 자신의 내면과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깨닫습니다.
즉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단순하지만 위대한 규칙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믿을까요? 
 
베네딕토 성인은 단순한 말의 가르침을 넘어 자신의 삶으로 그 진리가 실현된 비유가 되게 하였습니다.
수도 공동체를 세우고 그 공동체 안에서 8시간 일하고, 8시간 기도하고, 8시간 쉬는 규칙을 만듭니다.
그렇게 사는데도 행복한 모습을 유지하는 베네딕토 성인을 보며 많은 이가 일하고 기도하라는 진리를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천 년 이상을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 안에 심긴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야고 1,21-22) 
 
그렇습니다.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나를 통해 실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삶이 그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하는 하나의 비유가 됩니다.
이것이 진리를 전하는 방식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편지’, 즉 세상이 읽을 수 있는 ‘살아있는 비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과 같습니다.
우리는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실천된 비유들입니다.
그 비유의 가치는 영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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