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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8-05 조회수 : 145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마태오 14,22-36 
 
내 삶을 기적으로 만드는 방법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소원이고 베드로는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면 기적과 소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둘 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바란다는 점에서는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소원이 ‘그저 막연한 바람’에 머문다면, 기적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현실’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둘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삶을 소원의 영역에서 기적의 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길을 잃습니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고민부터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기로까지,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우리의 영혼은 오히려 더 가난해지는 역설을 경험합니다.
이 불안의 파도를 잠재울 명확한 목소리, “이 길로 가라!” 하는 단 하나의 명령을 우리는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체험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그분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내 온 존재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의 상식, 나의 경험, 나의 계산이 “불가능하다.”라고 소리칠 때, “아니다, 그분의 명령만 있다면 가능하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가장 숨 막히는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 주인공이,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맹렬히 회전하며 추락하는 우주정거장에 도킹을 시도합니다.
모든 데이터를 분석한 인공지능 컴퓨터 ‘타스(TARS)’는 0.1초의 오차도 없이 보고합니다.
“불가능합니다(It’s not possible).” 확률적으로, 논리적으로, 계산적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완벽한 분석입니다. 
 
하지만 주인공 쿠퍼는 그 냉철한 분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컴퓨터의 계산, 즉 눈앞의 ‘풍랑’을 넘어 자신의 목표를 바라보며 이렇게 답합니다.
“아니, 필요하다(No, it’s necessary).”
이것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당위성의 문제라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는 컴퓨터에게 불가능 보고를 멈추고, 자신이 도킹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하라고 ‘명령’합니다.
그 명령이 인공지능의 계산을 뛰어넘어 불가능의 한계를 돌파하게 만듭니다. 
 
역사는 이 명령이 한 개인의 운명을 넘어 한 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15세기 프랑스, 백년전쟁의 패배로 나라 전체가 절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프랑스 동레미의 작은
시골 마을에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글도 읽을 줄 모르고, 전투 훈련은커녕 말 한 번 타본 적 없는 17세 소녀, 잔 다르크였습니다. 모두가 패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일 때, 그녀는 홀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를 구하라.” 
 
왕과 신학자들, 백전노장의 군인들까지 모두가 그녀를 비웃었습니다.
불가능을 넘어 망상이라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잔 다르크에게 그것은 의심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녀의 심장을 관통한 그 명령은, 두려움에 떨던 왕세자를 일으켜 세웠고, 흩어졌던 군인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습니다.
결국 그녀는 갑옷을 입고 군대의 선봉에 서서 오를레앙을 탈환하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그녀의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세상의 소리를 압도하는 단 하나의 ‘명령’을 붙들었던 믿음이 나라를 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전능하신 분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명령’해주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왜일까요?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당신의 능력을 함께 펼쳐나가는 ‘협력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명령을 통해 우리가 무엇까지 할 수 있는 존재인지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신비는 놀랍게도 최신 기술 속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AI) 그림 서비스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그림 그리는 능력이 전혀 없어도, AI에게 어떤 그림을 그려달라고 ‘명령’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명령, 즉 ‘프롬프트’가 결과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냥 “고양이 한 마리”라고 명령하면, 영혼 없는 합성물이 나올 뿐입니다. 
 
하지만 “저녁노을 아래, 낡은 성경책 옆에서 두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기도하는 아기 고양이를
렘브란트의 화풍으로 그려줘”라고 구체적으로 명령하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걸작이
탄생합니다.
AI라는 전능한 화가는, 그 자신이 먼저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용자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창의적으로 ‘명령’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수준의 작품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저도 가끔 “주님, 알아서 잘 좀 해주십시오” 하고 퉁치는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거센 풍랑이 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제자들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베드로가 외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마태 14,28) 
 
보십시오.
베드로는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라는 막연한 소원을 빌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명령’해달라고 구체적으로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너라.”(마태 14,29) 하고 명령하시자, 그 명령 한마디가 베드로를 배 밖으로 나오게 했고, 물 위를 걷게 했습니다.  
 
삶이 기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구체적인 명령을 청하십시오.
“주님, 오늘 하루는 한 사람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하루가 되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주님, 오늘 제가 그동안 성당 안 나오는 아이에게 성당 나오라고 할 테니까, 기적적으로 성당
나오겠다고 대답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배우자를 더 깊이 사랑하는 일이든, 새로운 소명을 시작하는 일이든, 혹은 오래된 상처를
용서하는 일이든,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는 그 명령을 청하십시오.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하여 첫걸음을 내디딜 때, 당신의 삶은 소원의 바다를 건너 기적의 땅에 닿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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