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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8-15 조회수 : 124

루카 1,39-56 

 

왜 똑같이 노력하는데, 누구는 추락하고 누구는 승천할까? 

 

 

찬미 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교회의 가장 큰 축일 중 하나인 성모님의 승천을 기념합니다.

이 ‘승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시는 성모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 하지만 동시에 나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마치 신화처럼 느껴지는 어떤 사건을 떠올리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의 승천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특별 이벤트로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모님의 어떤 삶의 열매이자 결과입니다.

사실 위로 올라감은 내려옴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낚싯바늘을 물어야 고기는 사람의 식탁으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좀 비유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하느님은 우리에게 미끼를 던졌고 그것을 덥석 무신 분이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사실 예수님의 강생과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강생의 완성이 승천입니다.  

 

왜 성모님은 예수님을 덥석 물으실 수 있으셨을까요? 하늘을 바라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행복을 찾습니다.

성모님은 행복을 하늘에서 찾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잉태하기를 원합니까?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는 몸으로보다 마음으로 먼저 잉태하셨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잉태하고 사는지 살펴야 합니다.

마음으로 아무것도 잉태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잉태는 낳음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그 낳음은 행복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미래의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무언가를 잉태하고 삽니다.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승천도 하고 추락도 합니다.  

 

영화 ‘마약왕’의 주인공 이두삼은 처음 이렇게 자신을 변호합니다.

“내가 와 이 짓을 하는데? 다 우리 식구들 배불리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거 아이가!” 그런데 그는

가족을 잉태하였을까요, 아니면 마약을 잉태하였을까요? 그는 또 말합니다.

“애국이 별거 있나? 뽕 팔아서 일본 넘들 뿅 가게 만들고 달러 싹쓸이해오면, 그게 바로 애국이지!” 

 

그가 만약 진정으로 가족을 잉태하고 살았다면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 가족이나 나라는 핑계였습니다.

그가 잉태한 것은 세.육.마였습니다.

돈과 여자와 권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어땠습니까? 황금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저택에서, 아내도 동료도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아 총을 든 채 환각에 시달리다 총을 맞고 체포됩니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우리가 잉태해야 하는 것은 바로 땅으로 나를 끌어내리는 세.육.마.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나를 더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날게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추락시키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 신화 속 이카로스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카로스는 하늘을 나는 자유에 도취되어 아버지의 경고를 잊고 교만하게 태양을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그 교만이 날개를 녹였고 그를 추락시켜 죽였습니다.  

 

반대로, 어떤 잉태는 우리를 하늘로 들어 올립니다.

그것은 숭고한 사랑인데, 이것을 잉태하면 세.육.마.로부터 나를 들어 올려 하늘 나라의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  

 

1938년, 니컬러스 윈턴이라는 젊은 영국인은 나치의 위협 아래 놓인 유대인 아이들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거룩한 가치를 잉태했습니다.

그는 이미 그 높은 가치를 품었기에,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더 높은 수준의 세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669명의 아이들을 구해냈고, 50년간 그 사실을 잊은 듯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50년 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한 방송국에서 그와 그가 구한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진행자의 한마디에, 수십 명의 중년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구했다고 믿는 누군가를 위해 그 방송국까지 왔습니다.

그들도 승천했지만, 참 승천의 기쁨은 윈턴 경이 누렸습니다.

그 일로 세상이 그를 불러올려 영광을 준 것입니다. 이것이 승천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이 말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아기를 잉태한 엄마의 정신은 온통 아기에게 향합니다.

아기를 위해 몸에 안 좋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세.육.마.의 집착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아기 때문에 술을 끊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에서 어디를 향해 승천해야겠습니까? 내 안에 그것을 잉태하면 내가 세상 것은 다 버리고 그분을 다시 만나기를 원하는 것. 그것은 말씀과 성체입니다.

이것이 선포되고 주어지는 곳은 성당의 제단입니다.

우리가 승천하는 곳은 바로 성당의 제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엔 영원한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를 위해 우리에게 자꾸 미끼를 던지시는 것입니다.  

 

베네수엘라에 ‘엘 시스테마’라는 기적의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라는 분이 마약과 범죄로 가득한 빈민가의 아이들에게 총 대신 바이올린을, 칼 대신 첼로를 쥐여 주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세상의 소음과 폭력이 아닌, 하늘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잉태’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가난과 절망의 삶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무대에 서는 희망의 삶으로 ‘승천’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잉태하겠느냐?

너를 추락시키는 세상의 소음을 잉태하겠느냐, 아니면 너를 승천시키는 하느님의 거룩한 침묵과

말씀을 잉태하겠느냐?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이미 잉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끊임없이 세.육.마.에서 멀어져 이웃 사랑을 더 실천하게 만드는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나를 승천시키는 것을 사랑합시다.

자신 안에 죄의 수렁에서 구해 줄 보물이 있었음을 너무 늦게야 알았다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래되고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우심이여,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보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셨지만 저는 제 밖에서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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