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39-56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건들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오늘은 여러모로 은혜롭고 감사한 날입니다. 혹독했던 일제 강점기로부터 벗어나 국권을 회복한 날인 동시에,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날, 광복절입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국경일이기에, 공휴일로 지정해, 그날의 감동과 의의를 기억하도록 초대합니다.
대대적인 특별 사면도 이루어지고 다채로운 기념행사도 이어집니다.
이렇게 좋은 날, 우리 가톨릭교회는 또 다른 큰 행사를 병행하는데, 바로 성모 승천 대축일을 경축하고 기념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이땅에 오신 성모님께서 영광스럽게 하늘로 들어 올려지심을 기억하고,
우리도 언젠가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희망을 지니는 하루입니다.
이토록 은혜로운 날, 루카 복음사가는 성모의 노래, 즉 마니피캇을 소개하며, 성모님의 탁월한 신앙과 지극한 겸손의 덕을 기억하게 합니다.
마리아께서 지니셨던 겸손의 덕은 복음서 여러 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특별히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한 뒤 부른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Magnificat)의 전체를 휘감고 있는 분위기는 겸손 그 자체입니다.
성 암브로시오 교부는 마니피캇에 대해 ‘성모님의 완벽한 겸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찬가’라고 강조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 46-48)
마리아는 노래 서두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낮춥니다.
아니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신원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자신은 찬미를 받을 자격이 조금도 없는 존재이라는 것, 자신은 태생적으로 종이며 본질적으로 피조물이라는 것을 잘 깨닫고 있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주인이신 주님께서 종인 자신을 굽어보셨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굽어보심은 자신이 잘 나서가 아니라 주님 자비의 시선 때문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 48-49)
마리아는 겸손을 가장하지도 않았으며 하느님이 주신 선물을 거절하지도 않았다.
동시에 자신을 스스로 값진 보물로 여기거나 신데렐라처럼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과분하고 크신 하느님 은총 앞에 두려워 도망가지도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영광과 위대함이 모두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라는 것을 미리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니피캇은 그냥 흘려들을 노래가 결코 아닙니다.
교만한 자들, 그릇된 지도자들, 나눌 줄 모르는 부자들에게는 철퇴 같은 노래요, 마리아처럼 작고
비천한 사람들을 칭찬하고 축복하는 찬가입니다.
마리아처럼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큰 위로와 해방을 선포하는 승리의 찬가입니다.
마리아는 마니피캇을 엘리사벳 집 마당에서 딱 한 번으로 노래부른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애 내내 18번 곡처럼 수시로 부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께서 수시로 부르셨던 마니피캇을 따라부르면서, 자신의 인류 구원 사업의 계획서를 작성하셨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18번곡 마니피캇을 외우다시피 한 예수님께서 공생활 첫 시작 때 나자렛 회당으로 들어가셔서 희년을 선포하시며 이사야서를 봉독하시는데, 그 내용은 마니피캇과 일맥상통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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