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15살 때, 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 후 오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에서 좋은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무엇보다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이 아이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내성적이고 또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기까지 했던 이 아이는 특별히 하느님과 깊은 만남을 가지면서 변화되었습니다. 17살이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암은 제가 살면서 받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입니다.”
중병에 걸렸을 때, 사람들은 악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런 큰 병에 걸렸을까?’라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병은 악이 아니라 그냥 시련이고 고통일 뿐입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높일 수도 있고, 그 영광이 드러나는 하느님의 선물 안에서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했고, 또 교회에서 많은 봉사를 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도 고통과 시련은 예외 없이 찾아옵니다. 그렇게 열심히 생활했어도 하느님의 특별 대우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주님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더 큰 은총을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았는데 왜 은총을 주십니까?”라고 속으로 불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느님의 계산법과 인간의 계산법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포도밭 일꾼들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정의와 은총이 우리의 계산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포도밭 주인은 아침 일찍부터 일꾼을 불러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으로 계약합니다. 그 후 9시, 12시, 3시, 5시에도 장터에 나가 일꾼들을 불러들입니다. 문제는 품삯을 지급하는데,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이나 5시부터 일한 사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만 받습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며 불공평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기준에서는 은총은 공로의 대가가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일찍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나, 늦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똑같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구원의 기쁨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약속을 위반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비교와 시기 때문에 약속을 위반한 것처럼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하느님의 은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논리는 “내가 노력한 만큼 더 받아야 한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논리는 모두에게 똑같이 베푸시는 사랑과 자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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