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목요일]
마태오 24,42-51
나는 마땅히 살아야 할 나를 살고 있는가?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단호하고도 명확하게 명령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그런데 형제자매 여러분, ‘깨어있다’는 것이 과연 무슨 뜻일까요? 잠을 자지 않고 눈을 뜨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깨어있음’이란,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 목적대로 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만약 우리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주님 앞에 서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주님, 저는 깨어있었습니다.” 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아니면 혹시, “아,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아직 제가 했어야 할 일을 시작도 못 했습니다.”라고 후회하게 될까요?
여기, 실제로 죽음의 문턱에서 이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개그맨이자,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연 매출 10억 원의 식당 대표가 된 고명환 씨입니다.
고명환 씨는 2005년,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그 순간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근데 그때 후회가 딱 하나 밀려오더라고요. 돈, 집, 차 이런 건 하나도 후회가 안 되고… ‘내가 마땅히 살았어야 될 나를 못 살고 죽는구나.’ 그 후회가 너무 큰 거예요.
저는 유재석 씨 같은 개그맨이 될 깜냥이 안 되는데,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냥 끌려온 인생을 산 거죠.
그게 가장 후회가 됐어요.”
보십시오.
죽음 앞에서 그가 후회했던 것은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는 돈이나 성공, 명예가 아니었습니다.
단 한 가지, ‘나를 만드신 분의 목적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땅히 살았어야 할 나’, 즉 하느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고유한 사명을 살지 못하고, 그저 세상의 흐름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았던 것을 가장 뼈아프게 후회했던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남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이 진짜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친 듯이 책을 읽었습니다.
3년 동안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으며, 동서고금의 지혜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발견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인생은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요.
그러려면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해요. 저는 책을 통해 그걸 알았어요.”
그렇습니다.
모든 만들어진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 컵은 물을 담기 위해, 이 마이크는 소리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만약 컵이 물을 담지 못하고 마이크가 소리를 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량품입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우리를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목적, 즉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죽을 때 하게 될 가장 큰 후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그 사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은 그 답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 식솔들을 맡겨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그는 어떻게 하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바로 ‘제때에 양식을 내어주는 삶’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식은 단순히 빵이나 밥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은총과 진리의 양식’입니다.
내가 책을 통해, 기도를 통해, 삶의 체험을 통해 얻게 된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을, 아직 그것을 맛보지 못한 굶주린 이웃에게 제때에 나누어주는 삶입니다.
고명환 씨는 이제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는 메밀국수 식당을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합니다.
동시에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자신이 책 속에서 발견한 희망과 지혜를 독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양식’을 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깨닫고 사는 사람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심판이 아니라 설레는 여행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언제가 가장 행복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보다, 짐을 싸며 계획을 세우는 ‘여행 전날 밤’이 가장 설렌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오늘 하루,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실히 완수하며 살았다면, 내일 주님께서 나를 부르러 오시는 그 죽음의 순간은 두려움이 아니라, 칭찬과 상급을 받으러 가는 가장 설레는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행복하려면, 내일의 죽음이 기다려져야 합니다.
오늘, 8월 28일은, 바로 이 ‘마땅히 살았어야 할 삶’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방황했던 위대한 성인,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의 축일입니다.
청년 시절의 아우구스티노는 당대 최고의 지성과 야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지고, 수사학자로서 세상의 명예를 좇았으며, 육체의 쾌락에 탐닉했습니다.
그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행복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단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땅히 살았어야 할 나’를 살지 못하고, 헛된 것을 좇으며 영혼의 허기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끊임없는 눈물의 기도와 암브로시오 성인의 가르침 속에서, 그는 마침내
서른세 살의 나이에 극적인 회심을 체험합니다. 정원의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집어서 읽어라(Tolle, lege)!”라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듣고 성경을 펼쳐 든 바로 그 순간, 그는 방황의 종지부를 찍고 마침내 ‘마땅히 살았어야 할 나’로 돌아오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는 남은 생을 사제와 주교로서, 그리고 위대한 신학자로서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했습니다.
그가 평생의 방황 끝에 내린 결론은 그의 저서 『고백록』의 첫머리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하셨기에,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는 안식을 얻지 못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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