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 24,42-51
거듭되는 방황 속에서도 항상 당신을 기억했나이다!
어제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기념일에 이어, 오늘은 아들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354-430)의 기념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눈물의 기도, 그 결과가 어머니와 아들, 두 분 다 교회 역사 안의 찬란한 별이 된 것입니다.
회심 이후 아우구스티노는 수도생활을 추구했는데, 그분의 영성을 따르는 이들이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회원들입니다.
아우구스티노회는 교회 영성사 안에 큰 역할과 기여를 해왔는데, 최근에 거둔 놀라운 결실이 레오 14세 교황님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후배 수도자들을 위한 삶의 지침으로 ‘수도규칙’을 썼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수도규칙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들 가운데 살아계십니다.”
“규칙을 여러분들에게 선물로 드립니다만, 규칙 속에 묶여서 노예처럼 살지 말고 은총으로 자유롭게 살아가십시오.”
아우구스티노는 아무런 갈등 없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공동체와 관련된 그의 사상 안에는 반 유토피아(Anti-Utopia)에 대한 생각이 깃들어있음이 확실했습니다.
그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힘에 겨운 규칙의 이행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수도원이 광신도들의 모임과 같은 성격을 지녀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도자들끼리 형제애를 실천함에 있어서 환상을 지니지 말 것을 또한 권고합니다.
수도원도 엄연히 또 하나의 세상이라는 것을 아우구스티노는 잘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수도자들이 능력도 안 되면서 지나치게 아름다운 삶을 연출하려는 데만 몰두하다보면 어색하거나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동료 수도자들에게 일주일에 한번 씩 정기적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라고 권고했는데, 그 거울은 다름 아닌 ‘규칙서’였습니다.
정기적으로 규칙서를 들여다보면서 자신 안에 왜곡된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지속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위대한 대(大) 성인 아우구스티노의 파란만장하고 굴곡 많았던 신앙여정을 묵상하면서 ‘바닥 체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약한 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인생의 가장 밑바닥, 아우구스티노는 그 가장 밑바닥에서 주님을 절실하게 만났고, 거기서 주님과의 영적 인생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세상 것들의 부질없음을 절절히 맛보았던 아우구스티노였기에, 가장 큰 아름다움이신 주님을 절실히 만났던 그였기에 이런 고백이 가능했습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삽나이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님을 찾았습니다.”
“나 홀로 될 때 타락한 생활을 했사오나 당신 안에서 새 생명을 찾아냈나이다.”
다음은 아우구스티노가 결정적 삶의 전환이 가능했던 배경이 된 기도입니다.
“나는 멀리 떨어져 방황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당신을 기억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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