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복음: 루카 14,1.7
맨 끝자리라도 감지덕지하면서 앉아야하겠습니다!
언젠가 당시 담당하고 있는 직책상 어쩔 수 없이 꽤 거창한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했을 때 겪은 일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수행 비서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크신 분’들을 서로 단상 상석에, 중앙에, 앞쪽에 앉게 하려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그러니 참으로 보기 민망하고 안쓰러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한 높은 바리사이가 초대한 잔치에서 비슷한 상황을 접하셨습니다.
초대받은 사람들, 정말이지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잘 차려진 음식 앞에서 자리가 무슨 대수입니까? 차려진 음식 맛있게 잘 먹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담소도 나누고, 흥겨운 시간을 보내면 될텐데...그들의 머릿속엔 어떻게 해서든 높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경직된 형식주의, 관료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예수님 눈에 정말이지 웃기기도 않았을 것입니다. 따끔한 한 마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미성숙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 하십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 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 10-11)
그들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했던 한 가지는 ‘겸손의 덕’이었습니다.
겸손의 덕은 어떤 덕일까요? 사람들은 때로 이 겸손의 덕에 대해 조금 오해도 합니다.
열등감에 의해, 심성의 나약함으로 인해, 또는 무지(無知)로 인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겸손의 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관계 사이에서 요구되는 것이 겸손의 덕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과 나 사이에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덕이 겸손의 덕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 피조물인 인간으로서의 자기 낮춤, 하느님의 영원성 앞에 시간에 종속된 유한한 존재인 인간임을 인식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느님 앞에 상대적 존재인 인간으로서의 겸손, 필연적인 존재인 하느님 앞에 우연적인 존재, 무한하신 하느님 앞에 유한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따지고 보니 하느님 앞에 선 한 인간이 취해야할 너무나도 당연한 태도는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하느님 앞에서 우리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이고 최선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자격도 없으면서 하느님 나라 잔칫상에 초대된 것은 순전히 그분 은총 덕분이기에 맨 끝 자리라도 감지덕지하면서 앉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입니다.
겸손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이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덕입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주제넘음입니다. 아예 높은 자리는 넘보지 말 일입니다.
높은 자리는 오직 하느님께로 돌려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비와 은총으로 우리 모두를 당신 나라에 초대하십니다.
그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고 외치며 기쁜 마음으로 가장 아랫자리를 찾아 앉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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