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해
9월 순교자 성월의 첫날이기도 한 오늘부터 연중시기 마지막 주간까지는 루카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읽고 묵상하게 됩니다.
루카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선교 사명은 당신의 고향 나자렛의 유다교 회당에서, 안식일 전례 중에 선포되고 개시됩니다. 예수님은, 이사 61,1-2의 말씀을 인용하여, 당신을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신 분”으로 소개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그리스어로는 그리스도, 아람어로는 메시아)이심을 밝히십니다. 세상과 일류를 위한 구원사업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며, 이 뜻을 완수하기 위해 그분으로부터 기름으로 축성되고 파견된 존재임을 선언하고 계신 겁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기쁜 소식, 잡혀간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에게는 해방, 눈먼 이들은 다시 보게 하기, 한 마디로 은혜로운 해 선포에 당신의 사명이 있음을 천명하십니다.
물론 말씀으로만 이루어지는 선포가 아니라, 온몸을 투신하여 이루어내실 선포를 말합니다. 당신의 구원 사업 일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한 완성까지 담고 있는 선포입니다.
이러한 사명 선포 앞에서 고향 사람들은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하면서도,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반문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사람인데, 어디서 저와 같은 권위와 능력이 나오게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의 표현입니다. 한마디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그 똑같은 사람들이 “화가 잔뜩 났다.” 하는 또 다른 반응이 뒤따르는 것을 보니, 그 말씀이 사람들을 무척이나 불편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첫 말씀이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하는 말씀이었으니 말입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장에서, 하느님을 대변하여 시대와 장소의 문제를 직시하고 소리를 높이니, 청중 대다수는 귀를 막고자 했고, 반대의 기세를 높이려 했습니다. 그러니 예언자는 늘 소외되고 반대의 표적이 되는 고독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구약시대의 대표적인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그것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 지역에서 펼쳐진 일을 상기시키십니다. 엘리야와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와(1열왕 17장), 엘리사와 시리아 군사령관 나아만에게 관한 이야기입니다(2열왕 5장). 이 두 이방인은 예언자들을 통한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구원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역사적 예를 통해서 우리는, 결국 예언자들이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 곧 하느님 말씀의 내용 때문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이라 하더라도, 세례성사를 통해 당신 자녀로 삼으신 가톨릭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백성 됨 또는 자녀 됨이 특권이라면, 오히려 하느님 말씀 청취와 실천에 더욱더 모범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주님 말씀에 더욱 귀 기울이며, 비뚤어진 신앙 자세를 회개로 바로잡는 가운데, 자랑스러운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선조들처럼 믿는 대로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가꾸어나가는, 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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