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1-16.18-23
성모님은 예수님 구원사업에 꼭 필요한 분이셨을까?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를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고…” 수십 명의 이름이 ‘남자가 남자를 낳는’ 방식으로 장엄하게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지루할 것 같은 족보의 마지막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갑자기 2000년의 역사를 뒤흔드는, 아주 이상하고도 혁명적인 문장을 써넣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보십시오.
족보의 법칙이 깨졌습니다.
요셉이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갑자기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고 선포합니다.
마태오는 지금, 이스라엘의 모든 위대한 남성 족장들처럼,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 시골 처녀 마리아가 없었더라면 구세주께서는 결코 이 땅에 오실 수 없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지내며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굳이 이런 계획을 세우셨을까요?
왜 말씀이 사람이 되시기 전에, 그 말씀을 받아 안을 한 여인이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했을까요?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정말 꼭 필요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스승‘이 되셔야 하는데, 스승이 되려면 먼저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배우지 않고 혼자 스승이 되면 그 스승에겐 누구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저절로 배운 사람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
스승이 배웠다면 나도 배울 수 있어.’라는 마음을 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성모님께 무엇을 배우셨을까요?
첫 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법입니다.
곧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성경이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시어,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내셨다.” (루카 2,51)고 증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순종을 배워야 순종하는 법을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다.
1970년대 미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가 있었습니다.
그는 잘생긴 외모와 명문대 법대생이라는 지성을 가졌지만, 사생아로 태어나 평생 어머니로부터 진정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는 체포된 후 심리학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타인에게 속하는 법, 즉 사랑으로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세상을 파괴하는 악마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이란 먼저 나 자신에게서 나와 타인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것을 가르쳐 주신 첫 스승이 바로 성모 마리아입니다.
순종하는 법은 말씀과 은총, 두 가지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기적을 만들어낸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은 권위와 사랑의 균형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다혈질의 꼰대'였다고 말할 정도로 선수들에게 강한 권위를 내세웠습니다.
권위는 말씀이고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 강한 권위의 바탕에는 선수들을 향한
진정한 부성애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상당한 선수를 위해 자신의 비행기 좌석을 양보하고, 선수들의 발을 직접 씻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을 '가족'이라 여기며 선수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축구협회에 요구하는 것을 감독의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선수들은 그의 사랑을 알았기에 그의 권위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표징입니다.
이는 권위와 사랑이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마치 한 몸처럼 공존하며 서로를 강화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예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첫 스승입니다.
스승과 부모는 거의 동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승이 있어야 제자가 성장합니다.
스승 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 없이 온전히 성장하는 자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국악인이자 배우인 오정해 씨는 만당 김소희 선생이라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 비로소 진짜 소리꾼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김소희 선생은 제자에게 단순히 소리 기술만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밥상머리에서 제자의 그릇 크기를 보았고, 궂은일을 시키며 인내를 가르쳤습니다.
오정해 씨는 스승의 삶 전체를 배우고 그 인격을 닮아가면서 비로소 소리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훗날 대학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녀의 입에서는 어느새 스승 김소희 선생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스승이 있었기에 제자가 있었고, 그 제자가 다시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스승 없이 저절로 완전해지셨다면, 그분은 우리의 참된 스승이 되실 수 없습니다.
나와 같은 처지를 겪어보지 않은 분을 어찌 스승으로 따를 수 있겠습니까?
스승은 나와 같은 인간적인 조건 속에서도 높은 경지에 오른 분을 말합니다.
원래부터 그런 존재에게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한 온전한 인간으로서 첫 스승이 필요하셨습니다.
스승은 자신이 직접 겪고 배운 것만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제자는 “스승님께서 하셨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시기 위해, 먼저 한 인간으로서 순종을 배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첫 스승으로, 어머니 마리아가 꼭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첫 스승이셨던 어머니를, 십자가 위에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요 스승으로
주셨습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러니 우리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그분을 스승으로 삼을 때,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순종하는 법을 배워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어머니이신 스승께서는 우리를 당신 아드님께로 이끌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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