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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9-13 조회수 : 112

복음: 루카 6,43-49 

 

반석 위의 집 

 

 

말씀 기초 신앙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섬뜩한 경고를 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리고 뒤이어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바위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고백만으로 충분할까요? 

 

오늘 복음은 우리 신앙의 깊이를 다시 한번 성찰하게 합니다.

‘주님’이라는 고백은 종종 표징과 기적을 보고 생겨나는 믿음입니다.

마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 제자들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며 그분을 ‘하느님’으로 인정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체험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에서 당신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넘어, 그분을 삶의 ‘스승’으로 여기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신앙이 우리를 구원한다면, 스승 신앙은 우리를 성화시킵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우리는 ‘표징’만을 쫓는 신앙을 너무나 자주 만납니다.

하느님께서 기적을 베푸실 것을 굳게 믿지만, 정작 그분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경우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고 주장하거나, 무슨 환시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수준의 신비 체험은 성인 성녀의 삶을 살면서, 자신을 완전히 죽여 소유욕과 육욕,

교만이 완전히 사라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정도의 삶도 없이 표징만을 찾는 이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여기기는 하지만,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은 좋은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나쁜 열매를 맺게 되고, 그런 신앙은 집이라는 ‘주님’은 있지만 말씀에의 순종이라는 ‘반석’이 없기 때문에 쉬이 무너져버립니다. 

 

2000년대 초, 미국의 유타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브라이언 데이비드 미첼(Brian David Mitchell)이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아 십계명을 재해석하고 있으며, 다처제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맹세하며, 14세 소녀 엘리자베스 스마트를 유괴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의 아내들과 추종자들은 그가 하느님의 특별한 예언자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들 역시 미첼의 ‘표징’과 ‘음성’을 맹신했고, 미첼의 말이라면 그 어떤 악행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미첼의 지시를 따라 유괴된 소녀를 감금하고 세뇌하며, 자신들의 행동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합리화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는 고백했지만, 그분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인 ‘사랑’과 ‘정의’를 완전히 저버렸습니다.

결국 미첼은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그의 추종자들도 범죄에 연루되어 처벌받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정체성, 주님과 스승, 이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복음은 끊임없이 ‘스승’을 선택하라고 권고합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려는 사람이었고, 마리아는 그분을 스승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마리아는 나의 주님이라 하지 않고 나의 스승님이라 불렀습니다. 

 

기초가 없다면 그 위에 집을 짓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드 라 살(Jean-Baptiste de La Salle, 1651-1719) 성인은 원래 매우 부유한 귀족 가문의 상인이자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표징을 쫓는 데 만족하지 않고,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가난한 이들을 가르치는 사명’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려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부유한 아이들만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가난한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로부터 소외되어 범죄와 방황의 길로 빠져들기 쉬웠습니다. 

 

드 라 살 성인은 이러한 사회 현실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특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 그의 삶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으라 명하셨으니,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문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부와 명예를 버렸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고급 저택을 팔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 운영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는 교사들에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라고 가르쳤고, 자신도 직접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쳤습니다.

그는 세상의 표징을 쫓기보다, 자신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가장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셨던

그 발자취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수많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견고한 ‘반석 위의 집’이 되었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성인이자 가르멜 수도회 개혁가였던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을 닮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의 몸이 되어주실 다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않으십니다.

우리 말고는 다른 손도, 다른 발도 갖고 있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눈으로, 당신의 연민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고, 우리의 발로, 당신의 자비로운 발로 세상을 걸어 다니시며, 우리의 손으로 당신이 하시는 일을 해나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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