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역할
물리적인 지원과 재정적 도움 없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곁에는, 열두 사도 이외에, 그분의 사명 수행을 지원하기 위하여 속이 깊고 배려심 많았던 사람들, 예수님이 구원사업에만 전념하실 수 있도록 헌신적이었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 고마운 사람들 가운데는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다른 복음 저자보다도 루카는 이 여인들이 예수님 곁에서 보여준 역할에 대하여 많은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에만 언급되는 오늘 복음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어찌 보면, 지나칠 정도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던” 여인들 가운데는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인들”과 함께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하고 전하며, 그 구체적인 이름까지 적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기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구약성경 시대는 물론 여타 많은 문화권에서 여인들의 위상은 늘 그러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남편을 ‘바알’이라 부르는데, 이 용어는 본디 ‘주인’을 의미합니다( 훗날 가나안 지방의 자연신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 정도로 취급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실, 우리도 한때 ‘남편’을 ‘주인’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지금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한편, 율법 교사들은 제자들을 받아들일 때 여인들은 제외했으며, 유다교 공동체는 여인들을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은 유다교 전례에 참석해야 할 의무로부터 면제되었으며, 따라서 남성 열 명이 참석해야 비로소 집전될 수 있었던 전례에서도 여인들의 참석 여부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성들의 수가 수백이어도, 남성의 수가 열 명이 채워지지 않으면 전례가 집행될 수 없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여성의 해방과 자유를 위한 최초의 옹호자이며 주창자로 여길 수 있습니다. 특히 복음 저자들은 예수님의 복음 전파에 늘 함께했던 제자들 못지않게 여인들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오늘 복음 속 여인들의 재정적 도움은 그 시작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신 다음, 이들이 예수님을 동행하면서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직접 듣고 보게 한 것은 듣고 본 대로 당신의 모든 것을 증언하며, 동시에 당신의 뒤를 이어 구원사업을 펼쳐나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증언들 가운데 구원의 결정적 요소는 예수님의 죽음과 묻힘과 부활에 관한 것이었으나, 이 증언들은 제자들이 아니라 바로 여인들의 입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여인들의 역할은 제자들의 것을 뛰어넘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상 죽음, 무덤에 묻힘, 그리고 부활의 첫 증언들은 모두 여인들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세상과 인류의 구원사업을 펼쳐나가시면서도, 제자들을 포함한 사람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시며,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협조의 길에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 이웃에 대한 우리의 기도와 관심과 봉사가,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그 크신 주님의 구원사업에 일조하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신앙인의 삶을 드러내며 다지는,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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