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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9-28 조회수 : 126

루카 16,19-31  

 

 

심판은 예상보다 먼저 이루어진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자와 라자로’ 비유를 통해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부자가 지옥에 가고 라자로가 천국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으며 아브라함에게 라자로를 다시 살려 자신의 다섯 형제에게 보내 달라고 간청했을 때의 아브라함의 대답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루카 16,31)  

 

바리사이들의 상징인 부자는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무슨 가르침을 주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라자로는 언제 그 가르침을 받아들였을까요? 부자는 모았고, 라자로는 개들에게도 몸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을 살게 만든 첫 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를 수 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예를 보십시오.

그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로부터 끊임없이 학대받는 고통 속에서 보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그에게 '약하면 죽는다, 오직 강한 힘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생존 지향적인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보았고, 타인은 언제든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사랑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그리스도가 정상으로 보였을까요?  

 

어니스트 헤밍웨이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글보다 먼저 총 쏘는 법과

권투를 가르치며 '관계보다는 자기 생존을 위해 타인을 이겨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주었습니다.

헤밍웨이는 평생을 경쟁과 투쟁 속에서 살아남으려 했고, 그 결과 그의 내면은 안식 없는 '정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 파괴하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철저히 '생존 지향적 삶'을 선택한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고, 죽기까지 사랑하며, 원수까지 용서하는 '관계 지향적 사랑'의 극치입니다. 그러나 정글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러한 사랑은 오히려 독(毒)과 같은 지식입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남을 죽여야만 하는 그들에게, 스스로 죽기까지 내어주는 분의 진리는

너무나도 낯설고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죽여야 하는 이들이 죽으신 분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과 같이, 자신들의 율법과 생존 방식만을 고집하며 새로운 진리를 외면하는 이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삶 또한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근원적 선택의 방향이 정해졌습니다.

저는 네 살 때 할머니의 죽음으로 저의 첫 기억을 시작합니다.

할머니의 죽음에 관해 묻는 어린 저에게 어머니께서는 “죽음은 땅속에 묻혀 계속 잠자는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잠’이 두려웠습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면 ‘나도 할머니처럼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불안에 떨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자리에 누웠는데 너무나 편안한 밤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그날 친구들과 너무나 행복하게 뛰어놀았던 것입니다. 마음껏 웃고, 함께 서로를 챙겨주며 온종일 신나게 보냈던 날이었습니다.

그 행복한 기억이 저의 두려움을 잊게 해준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행복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행복은 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관계’에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근원적 친교를 위한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원적 선택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서 사제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근원적 선택이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으로 정해질 수 있지만, 이 선택이 영원히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새로운 스승들, 곧 ‘모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관계를 지향하는 지혜로운 삶’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모세나 예언자들이 가르친 것은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 워런 버핏은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자선사업에 기부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홍콩의 유명 배우 주윤발 또한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소유가 아닌 나눔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현대판 ‘모세들’입니다. 

 

이들의 삶은 우리에게 '생존 지향적' 삶에서 '관계 지향적' 삶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이들의 지혜를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곧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를 거부하는 이들이 어찌 천상의 지혜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성녀 마리아 고레티를 살해했던 알레산드로 세레넬리의 이야기는 이러한 '관계 지향적 삶'의 깨달음이 어떻게 회개와 신앙으로 이어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12살의 알레산드로는 11살 마리아 고레티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칼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과 생존을 위해 어린 생명을 빼앗는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렀고,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의 마음은 증오와 죄책감, 그리고 자기 보존만을 위한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감옥에서 잠든 알레산드로의 꿈에 마리아 고레티가 나타났습니다.

마리아는 그에게 순결한 백합 일곱 송이를 건네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알레산드로는 마리아의 순수하고 용서하는 영혼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난생 처음 '용서'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주는 해방감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근원적 선택은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부자였던 존 록펠러의 삶이 바로 이 지혜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33세에 백만장자, 43세에 미국 최고의 부자, 53세에 세계 최대 갑부가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돈 때문에 쓸데없는 보험료가 아까워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잘 만큼, 그는 재물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그의 몸을 병들게 했고, 의사는 그에게 1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절망 속에서 휠체어에 앉아 마지막 진료를 기다리던 어느 날, 그의 눈에 병원 로비에 걸린 액자가 들어왔습니다.

거기엔 이런 성경 구절이 쓰여 있었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사도 20,35) 

 

바로 그때, 병원비 문제로 다투는 한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들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록펠러는 조용히 비서를 불러, 아무도 모르게 그 소녀의 치료비를 전부 내주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소녀는 건강을 되찾았고, 록펠러는 멀리서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며 평생 처음 느껴보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돈을 모으는 삶이 아니라, 돈을 나누는 삶을 살기로 한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그가 나누기 시작하자 온몸을 괴롭히던 병도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결국 98세까지 장수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심판은 나의 예상보다 먼저 이루어졌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 ‘생존 지향적’ 혹은 ‘관계 지향적’인 근원적 선택을 하고 있으며, 이 선택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근원적 선택을 새롭게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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