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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0-01 조회수 : 52

복음: 루카 9,57-62: 예수님을 따르려면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려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의지와 열정 속에 숨어 있는 조건과 망설임을 드러내시며, 제자가 된다는 것은 곧 무조건적인 결단임을 가르치신다. 첫 번째 사람은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57절)하고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58절)라고 답하신다. 이는 제자의 길이 안락이나 보장을 찾는 길이 아니라, 십자가에 이르는 길임을 밝히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자는 그분과 함께 고난을 나누지 않고서는, 그분과 함께 영광을 나눌 수 없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84,2) 

 

두 번째 사람은 아버지의 장례라는 당연히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하고자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어라.”(60절)라고 하신다. 이는 가족의 의무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복음 선포의 절박성과 우선성을 드러내신 것이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부르심 앞에서 다른 어떤 것도 더 우선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사람은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주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62절)라고 하신다. 이는 롯의 아내를 떠올리게 한다(루카 17,32). 제자의 길은 뒤 돌아봄 없는 전진의 길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권고한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비록 넘어지고 쓰러질지라도, 다시 일어나 앞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Homiliae in Matthaeum 27,2)

오늘 복음은 우리 삶에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주님을 따르려 하면서도 여전히 조건을 달고 있지는 않은가? 편안함, 가족 관계, 재물이나 체면이 나를 붙잡아 뒤돌아보게 만들지는 않는가? 신앙생활은 늘 ‘나중에 하겠다.’는 유혹과 싸우는 길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부르심은 “지금, 여기서” 응답해야 하는 초대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안락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은 거처 없는 나그네셨고, 십자가를 머리 둘 곳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쉽지 않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걷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은총을 청합시다. 뒤돌아보지 않는 믿음의 용기, 망설임 없는 결단, 지금, 이 순간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신앙을 달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 삶이 점점 더 주님의 제자다운 삶, 즉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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