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총알이 빠를까요? 아니면 소리가 빠를까요? 정답은 총알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총소리를 들었다면, 그 사람은 총에 맞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총알이나 소리보다 더 빠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지구의 태양 공전 속도입니다. 총알이 300~1,200m/s인데, 지구의 태양 공전 속도는 약 30km/s입니다. 태양의 은하 공전 속도는 약 220km/s로, 지구보다도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이를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구나 태양의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하면 깜짝 놀랍니다. 예를 들어, 300km/h로 달리는 KTX를 밖에서 보면 정말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KTX를 타고 있으면 그 빠름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자기 역시 그 안에서 그 속도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것이다’라는 막연한 예측이 틀렸을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스스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인 양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를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단죄합니다. 심지어 하느님까지 판단하기도 합니다. 예측해서 판단하는 것보다, 기다려주고 이해하는 것이 인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측 안에서 쉽게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도 멀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길입니다. 이를 위해 인간적인 예측에서 벗어나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름으로 인해, 배고플 일이 없고 아플 일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름으로 얻는 은총이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고, 또 반대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 9,57)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고 하시지요.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안락과 안전을 포기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루카 9,59)라고 말하자,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게 하고, 너는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 9,60)라고 하십니다. 가족의 의무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닌,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가족과의 작별을 이유로 미루려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하십니다. 미련이나 망설임보다 결단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기준만을 생각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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