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8,1-5.10
죄 지으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유
오늘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증표, 바로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키고 이끌어주는 수호천사의 존재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인지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이르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태 18,3)
여러분, 어린이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특히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 아이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내일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엄마가, 아빠가, 바로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흔들리지 않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바로 어린이들이 가진 높은 자존감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자존감도 여기서 시작됩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는, 내가 얼마나 귀하게 보호받고 있는지를 깨달을 때 싹틉니다. 우리는 귀중한 것을 잘 보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실까요?
그 증거가 바로 우리 각자에게 보내주신 수호천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마태 18,10)
우리 각자를 담당하는 천사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 있다는 이 말씀보다 더 큰 우리의 존엄성에 대한 보증은 없을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어둠 속에서 싹틥니다. 나를 지켜보는 사랑의 시선이 없다고 느낄 때, 인간은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 나면,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나는 결국 이런 죄나 짓는 보잘것없는 존재구나’, ‘나는 사랑받을 자격도, 보호받을 가치도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깊은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도’ 조세형의 삶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한 인간을 어떻게 죄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언론의 과장된 묘사와는 달리, 그의 삶의 본질은 깊은 고독과 상실감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 혼란기에 태어나,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고아원을 전전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나는 버려진 존재다’,
‘나를 지켜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차가운 확신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 깊은 어둠 속에서 그의 범죄는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부유층만을 노린 이유에 대해 훗날 법정에서 이렇게 진술한 기록이 있습니다.
“가진 자들의 것을 훔쳐 그들이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이는 그의 범죄가 단순히 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처절한 몸부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죄의 끝은 허무였습니다.
십수 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그가 한 말은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제가 훔친 수많은 보석과 현금은 단 한 순간도 제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후회스럽습니다.
철창 안에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제가 정말로 훔치고 싶었던 것은 돈이나 보석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의 삶은 비극적인 증거입니다.
자신을 지켜주는 사랑의 시선이 부재할 때,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리는지, 그리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죄가 결국 자신을 얼마나 더 깊은 열등감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지를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어떻게 일상에서 살아낼 수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순간에 피어난 한 여성의 실화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네덜란드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여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체포되어, 악명 높은 라벤스브뤼크 여성 강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곳은 인간의 존엄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생지옥이었습니다.
굶주림과 질병, 혹독한 노동과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사람들은 하루하루 죽어 나갔습니다.
어느 날, 코리와 그녀의 언니 벳시는 자신들이 배정받은 막사에 지독할 정도로 벼룩이 들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더해진 끔찍한 환경에 코리는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언니 벳시는 조용히 기도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 성경에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기록되어 있잖니. 우리 이 벼룩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코리는 언니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끔찍한 벼룩에 대해 감사하라고?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들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벼룩을 두고 감사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막사에서는 간수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수감자들을 폭행하고 물건을 빼앗아 갔지만, 유독 자신들의 막사에는 간수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간수들은 벼룩이 옮을까 두려워 그 끔찍한 막사에 들어오기를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 벼룩들 덕분에, 그들은 저녁마다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숨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벼룩이 바로 그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였던 셈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코리 텐 붐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을 줍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 불평과 원망이라는 죄에 빠지기 가장 쉬운 순간에도, 우리가 원하고 노력하기만 하면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직장 상사, 속 썩이는 자녀, 나를 괴롭히는 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보며 원망과 죄에 빠지는 대신, 그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찾아봅시다.
믿음은 노력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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