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0,38-4
묵상을 동반하지 않는 묵주 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습니다!
오늘은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묵주 기도를 좋아하셔서, 묵주 기도의 교황이라고 불리셨던 바오로 6세 교황님의 묵주기도에 대한 고백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묵주기도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단순하고 깊이가 있고, 훌륭한 묵상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바칠 때 마다, 제 영혼의 눈앞에는 예수 그리스도 생애의 중요한 사건들이 지나갑니다.
이 기도의 신비들은 성모님의 마음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있는 친교를 나눌 수 있게 저를 이끕니다.
찬미의 기도이며 간구의 기도인 이 기도가 묵상기도로 넘어가길 희망합니다.
묵상을 동반하지 않는 묵주기도는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습니다.”
따지고 보니 묵주기도는 참으로 높은 수준과 품격을 갖춘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복음서에 근거하고, 복음서에서 출발하며, 복음서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기도는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 역사 안에 들어오시어 구원 사업을 이루신 중요한 과정들을
순차적으로 반영하고 있고, 조화롭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 그분께서 행하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묵상기도입니다.
하느님 구원사업 전체를 관상하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기도입니다.
묵상 없는 묵주기도는 영혼 없는 육신이라는 바오로 6세 교황님의 권고 말씀에 가슴을 치며 묵상과 함께 하는 고통의 신비를 만들어봤습니다.
묵주 기도 바치실 때, 열심히 묵주를 돌리는 것도 좋지만, 각단의 신비 앞에 잠시 멈춰서 묵상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고통의 신비 제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이제 메시아로서 환호와 박수갈채의 순간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피하고만 싶은 십자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 남아있는 것은 초조한 심정으로 ‘예정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코스를 묵묵히 밟아나가시는 예수님의 뒷모습이 참으로 고독해 보입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번민하시고, 예정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기가 너무나 괴로우셨던 나머지 ‘피땀’까지 흘리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한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있어 십자가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십자가 없이 구원 없고, 십자가 없이 영원한 생명도 없다는 진리를 깨우치는 일입니다.
고통의 신비 제2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맞으심을 묵상합시다:
본격적인 십자가 형벌이 시작되기 전, 병사들은 죄수를 낮은 기둥에 묶습니다.
사형집행에 앞서 채찍질을 시작합니다.
가죽 채찍이나 끝에 작은 납 구슬을 단 채찍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채찍은 사형수들의 등, 가슴, 머리, 배를 향해 내리쳤습니다.
단 한 번의 채찍질로도 피부는 터지고 파열되었습니다.
몇 차례의 채찍질만으로도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분은 다름 아닌 수 천 번도 더 되는 채찍질을 고스란히 견뎌낸 수난 예수이십니다.
육체적인 상처보다 더욱 그분을 고통스럽게 만든 상처는 정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그 숱한 모욕과 조롱, 침 뱉음 그 사이를 뚫고 묵묵히 걸어가고 계십니다.
고통의 신비 제3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 쓰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의 체포 후에 펼쳐진 장면들은 스릴러 영화보다 더 참혹하고 끔찍했습니다.
주먹세례, 채찍질, 비아냥, 침뱉음, 가시관! 병사들은 뾰쪽뾰쪽한 가시들로 가득한 큰 관을 모자처럼 만들어 그분 머리 위에 꾹 눌러 씌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준비해놓으신 그 살 떨리는 ‘잔혹사’를 묵묵히 수용하십니다.
얼마나 두려우셨으면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의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의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고통의 신비 제4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군인들이 십자가 나무에서 손을 떼자마자 예수님의 몸이 심하게 휘청거립니다.
총독관저에서 출발해서 골고타 언덕에 이르는 길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나와 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당신 등에 지고 힘겹게 골고타 산을 오르십니다.
우리 깊은 상처를 싸매주기 위해 또 다른 십자가를 지십니다.
예수님을 주님이요 이정표로 삼고 이 땅 위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운명 역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슬픈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셨기에 이 땅 위에서 우리의 운명 역시 슬픈 운명입니다.
그분께서 쓸쓸히 홀로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도 마땅히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고통의 신비 제5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지니신 능력을 고려할 때 치욕의 십자가 죽음을 충분히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진해서 십자가 위로 올라가십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만 생각하신 예수님, 그분의 순명으로 이 세상에 구원이 왔습니다.
우리 죄인들도 희망을 가지게 됐습니다.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것을 완수하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모든 것을 획득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새로운 왕권의 첫출발을 알리는 깃발입니다.
구원의 서막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 역시 죄에 죽어야 하겠습니다. 거짓된 자아에 죽어야 하겠습니다.
쓸데없는 우월감과 교만함에 죽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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