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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0-11 조회수 : 74

우리는 종종 어린이를 보면,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묻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첫 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돌잔치에서의 중심 행사로 ‘돌잡이’를 꼽을 수 있습니다. 돌상 위에 여러 가지 물건을 올려놓고 아기가 무엇을 잡는지에 따라 아이의 장래 직업이나 재능을 점쳐보는 것이지요.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아이의 미래를 궁금해합니다.


의과 대학에 다니고 있는 삼촌이 공부하고 있는 세 살짜리 조카에게 묻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조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구슬 아이스크림 만드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삼촌은 약간 실망했습니다.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조카가 겨우 구슬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겠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삼촌처럼 의과 대학에 가면 어때? 그러면 사람 살리는 의사가 되어 보람 있게 살 수 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조카는 단호하게 “싫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의사가 되면 아프고 슬픈 표정을 계속 봐야 하잖아. 구슬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아저씨는 정말 행복할 거야. 구슬 아이스크림을 받은 아이들은 좋아서 모두 환하게 웃거든. 나는 행복한 얼굴을 보는 게 좋아.”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을 약간 각색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과연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면서 찡그리고 화난 얼굴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세상의 기준이 아닌, 주님의 기준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 11,27)


이 여인의 외침은 당시 유대 사회의 배경에서 볼 때, 훌륭한 아들을 낳고 기른 어머니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 개인에 대한 칭찬을 넘어, 그분을 잉태하고 길러내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축복의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일 뿐입니다. 혈연적, 육체적 관계를 통해 예수님과 맺어진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으십니다. 성모님께서 복되시다는 사실은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행복의 기준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참된 행복은 세상의 기준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의지적인 믿음에 있습니다. 이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과연 사람들에게도 이 행복을 나눠주고 있을까요?


오늘의 명언: 어떤 것도 홀로 좋거나 아름다울 수 없다(랄프 왈드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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