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1,42-46: 정의와 사랑의 실천을 소홀히 하는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에게 매우 엄격한 책망을 하신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라는 표현은 단순한 꾸짖음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에서 멀어져 있음을 드러내는 심판의 말씀이다.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외적인 형식에만 집착할 때,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돌아봐야 한다.
바리사이들은 십일조와 같은 율법의 세부 규정에는 열성적이었지만, 정작 더 중요한 정의와 하느님의 사랑은 실천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왜곡된 신앙태도를 “드러나지 않는 무덤”에 비유하신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경건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 악취가 나는 무덤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율법 교사들 역시 자신들은 행하지 않으면서 남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의무만 강요하는 위선적 태도로 책망을 받는다. 그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직분을 받았지만,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과 정의를 잊어버린 것이다.
성 예로니모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율법의 글자에는 집착하지만, 영을 알지 못한다. 글자는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죽이며, 영은 생명을 준다.”(Commentarium in Matthaeum 23,23)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도 경고한다: “율법을 해석하는 자가 자신은 행하지 않고 남만을 책망한다면, 그는 가장 무거운 심판을 피할 수 없다.”(Homiliae in Matthaeum 72,3)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겉모습만으로는 하느님 앞에 설 수 없으며,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참된 신앙인의 모습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겉모습만 신앙인으로 보이려 하지는 않는가? 나는 말로만 옳은 것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사랑과 정의를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신앙은 단순히 전례 참여나 기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자비, 정의, 용서, 사랑의 열매로 드러나야 한다.
가정에서는 서로 존중하고 용서하는 모습으로, 직장에서는 정직과 정의로운 태도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자비와 섬김으로 드러날 때, 우리는 바리사이들의 길이 아니라, 참된 제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불행하여라”가 아니라, “행복하여라”라는 축복으로 바뀌기를 원하신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겉과 속이 일치하는 신앙,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때 이루어진다. 주님 앞에서 진정한 신앙인으로 서도록 은총을 청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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