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선언, 셋!
오늘 예수님은 어제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스스로 바리사이들과 다를 바가 없음을 고백한 율법 교사들을 향하여 불행 선언을 이어 가십니다.
오늘의 첫 번째 불행 선언에서 무덤이 다시 언급되는 것을 보면, 어제의 불행 선언과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조상들이 잘못해서 처형해 버린 위인들, 특히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여 속죄의 뜻을 피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참 예언자들 모두 갖은 반대와 핍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을 박해한 사람들은 자신을 율법에 성실한 사람, 곧 의로운 사람으로 자처하던 사람들이었으며,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은 조상들의 이 소행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내다보시며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이르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예언자 가운데 예언자이시며 의인 가운데 의인이신 당신의 죽음은 물론, 당신이 파견하실 사도들의 운명을 미리 예고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보시기에,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입니다.” 조상들의 잘못에 대한 속죄의 뜻을 밝히기 위해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한다고 믿고 있던 그들이 이제 자신들의 무덤을 걱정할 때가 된 것입니다.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회개를 멀리하여 무죄한 이들의 피를 맛보고자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개탄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버리는” 작태를 불행 선언의 대상으로 거론하십니다. 율법 준수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유다교 지도자들에게 율법 자체는 그렇게 중요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세부 율법을 양산해 내기에 이른 율법 해석의 다양성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는 결과, 다시 말해서 (루카에게 ‘지식’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의미하기에) 하느님 나라 입성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기에, 이러한 불행이 선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엊그제부터 이어온 불행 선언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내일 복음 말씀이 적시하고 있듯이, 위선자로 고발됩니다. 다시 말해서,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믿는 대로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로 비난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국한되는 질책은 아닙니다. 우리도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아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며, 믿는 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위선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언행(言行)과 지행(知行)과 신행(信行)이 일치하고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가톨릭 신앙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한층 높이는 복된 하루,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말과 앎과 믿음이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뜻깊은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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