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2,1-7
언제 두려움이 사라지는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두려움과 마주합니다.
미래, 실패,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까지.
이 두려움은 마치 우리를 옭아매는 사슬과 같아서, 우리를 위선적으로 만들고 거짓말을 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두려움의 본질을 꿰뚫어 보시고,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아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는 머리카락까지도 모두 세어 놓았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루카 12,6-7)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보호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찮은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느님의 손길 안에 있는데, 하물며 그분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우리를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안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언제 두려움이 사라지는가?" 그 답은 바로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부터"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이 없어서 생깁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믿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우리 안에 싹트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중요한 관계는 '믿음의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결혼을 예로 들어 봅시다.
배우자를 믿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진정한 결혼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안 믿으려는 사람은 결혼해서도 의처증이나 의부증에 시달립니다.
아무리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리 충실한 모습을 보아도, 결국은 불신과 두려움에 갇혀 끊임없이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위선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약해 보일까 봐,
세상에 잡아먹힐까 봐, 혹은 사랑받지 못할까 봐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포장하는 것입니다.
마치 멧돼지가 발에 가시가 박혀도 절뚝거리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글에서는 약하게 보이면 바로 사냥감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이 바로 이런 위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보호를 믿기로 결심하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위장하고 두려움에 갇혀 살았습니다.
여기, 아버지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 때문에 평생 위선적이고 경쟁적인 삶을 살았던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이무석 교수의 책 '삼십년 만의 휴식'에 나오는 실제 상담 사례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늘 불안과 강박에 시달렸습니다.
끊임없이 남들과 경쟁하며 이기려 했고,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자신을 혹사했습니다.
그의 불행의 근원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있었습니다.
평생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사랑이나 인정의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늘 비판과 냉대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그 노력이 사회적인 성공으로 이어졌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지독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두려움이 그를 위선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겉으로는 강하고 능력 있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늘 비난받을까 봐 전전긍긍했고,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했습니다.
상담 과정에서 그는 마침내 이 두려움의 실체를 직면했습니다.
이무석 교수는 그에게 아버지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더 이상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하고, 오히려 그 역시도 사랑받지 못했던 불쌍한 존재였음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이 '결심'은 그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무석 교수는 그의 꿈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를 용서한 뒤 그가 꾼 꿈에서, 예전에는 늘 엄하고 거대했던 아버지가 소파 위에 있는 작은 강아지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이 상징적인 꿈은 그가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결심과 함께 그의 내면에서 '믿음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의 인정을 구하지 않아도
자신이 존재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치유되어 30년 만에 비로소 '휴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위선적인 삶은 막을 내렸고, 그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이야기들 속에서 "언제 두려움이 사라지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믿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입니다.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하는 이유는,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행복을 위한 근원적인 필요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기로 결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위선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참된 평화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의 큰형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릴 적 밤마다 극심한 가위눌림이라는 어둠의 세력에 시달렸던 형님은, 스스로 강해지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이제는 주님께 나를 온전히 맡기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가위눌림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성호를 긋고 자신을 주님께 의탁하는 '믿음의 결단'을 내렸고,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보호가 임하며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어둠의 세력과 싸우며 강한 척 살지 않아도 되는, 참된 평화를 얻었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이 없어서 옵니다.
그런데 믿음은 믿기로 결심할 때 생깁니다.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게 아닙니다.
그냥 주님께 우리 자신을 의탁하기로 결심하면 됩니다.
그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참된 믿음이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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