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2,1-7: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먼저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경계하라고 하신다. 누룩은 작은 것 같지만 온 반죽을 부풀게 하듯이, 위선은 작아 보이지만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한다. 겉으로는 거룩해 보이지만, 속은 탐욕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삶, 그것이 바리사이들의 모습이었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이 위선에 물들지 않도록 경고하신다.
이어서 주님은 두려움의 방향을 새롭게 가리키신다. “육신을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 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지옥에 던질 권한을 가지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4-5절) 즉,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단순히 벌을 받을까? 무서워하는 공포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저버릴까? 두려워하는 경외심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In Psalmos 111)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 자녀답게 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주님은 곧바로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하나도 하느님께서 잊고 계시지 않는다. … 너희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셨다.”(6-7절) 참새조차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머리카락까지 세신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세밀히 아신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분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불신앙이다.”(Homilia in Matthaeum 34)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두려움—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길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할 때, 세상의 두려움은 작아지고, 우리는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사람의 눈치를 더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하느님 앞에서의 진실을 더 두려워하는가? 나는 위선의 누룩 속에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 속에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간다면, 머리카락 하나도 잊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담대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