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들의 누룩
예수님은 당대의 종교적 지도자들인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겨냥한 불행 선언을 마치시고, 이제 제자들만을 대상으로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불행 선언이 결국 제자들을 위한 또 다른 차원의 가르침임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바로, 유다교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이 지상교회의 종교 지도자로 역할을 다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할 것”을 이르십니다. 바리사이들의 위선은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형식적 행위에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은 행위를 경계하도록 촉구하십니다. 마음속 깊이 숨겨진 성향들은 말과 행동을 통하여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위선은 언젠가 벗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진리와 대충 타협하려는 온갖 시도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제자들은 또한 신앙을 고백하는 시간과 장소에 대하여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증언은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울려 퍼져야 합니다. 동굴이든 지하 묘지이든, 연회실이든 사무실이든, 감옥이든 병영이든 진리를 위한 증언은 모두 밝은 데로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 무엇도 이 증언이 한낮에 울려 퍼지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제자들은 분명 예언자들처럼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면, 죽음 따위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실 능력을 지니신 분이기에,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 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의 두려움을 다른 두려움과 대립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미소한 피조물까지도 잊지 않으시며 헤아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살아야 하며, 그 믿음으로 주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모든 벗, 사도들을 기초 삼아 세운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교회 구성원들은 마땅히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세속적인 인간관계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거나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모든 신앙인은 늘 하느님의 시선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하루, 머리카락 까지도 세어 두실 정도로 우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보듬으시며 따뜻한 시선으로 돌보아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두려움 없이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며 실천하는, 활기찬 신앙인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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