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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0-23 조회수 : 135

루카 12,49-53 

 

독해지면 뜨거워진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섬뜩할 만큼 강렬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예수님은 세상을 당신 사랑으로, 성령의 힘으로 완전히 불태워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장작에 불이 붙으려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입니까?

바로 '장작이 말라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불쏘시개가 있고 거대한 불씨가 있어도, 장작이 축축하게 젖어있으면 연기만 피어오를 뿐 결코 활활 타오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지르러 오신 성령의 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불이 내 안에서 타오르게 하려면, 나 자신이 먼저 '마른 장작'이 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가득한 세상의 물기, 육체의 물기를 빼내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영과 육은 서로 반대되어, 육이 살고자 하면 영이 죽고, 육이 죽어야 영이 살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을 말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단식과 같은 극기입니다.

나를 '독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 때, 사순 시기를 맞아 큰맘 먹고 일주일 단식을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굶으셨는데, 일주일쯤이야 못하겠나 하는 젊은 혈기였지요.

하지만 배고픔은 생각보다 지독했습니다.

결국 이틀 만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한심해서 성당 바닥에 엎드려 있는데, 바로 그때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그분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나는 네게 내 전부를 주었다.” 

 

고작 이틀 굶은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주님께서 만나주셨을까요?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저의 가장 강력한 본능인 식욕을 '독하게' 끊어내며 제 자신을 말리려 했던 그 작은 노력, 그 틈새를 주님께서는 놓치지 않으셨던 겁니다.

젖어 있던 제 영혼에 잠시나마 물기가 마르는 그 순간, 성령의 불씨가 제 마음에 ‘착’ 하고 내려앉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토록 독해져야 하는 이유는, 성령께서 그냥 좋은 기운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저절로 사라지듯, 그분의 거룩한 생명이 들어오시려면 내가 주인 행세하던 나의 옛 생명이 죽어야만 합니다.

내가 시퍼렇게 살아 날뛰는 한, 성령의 불은 결코 붙을 수 없습니다. 

 

이 원리는 세상의 성공에서도 똑같이 발견됩니다. 가수 비, 정지훈 씨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독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배고픈 게 제일 무서워요.

그래서 독해졌어요." 

 

그를 독하게 만든 것은 바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피'였습니다.

지독한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던 그의 어머니는, 온몸이 퉁퉁 붓고 심지어 목에 인슐린 주사 바늘을 아홉 개나 꽂은 채로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하셨습니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피눈물을 삼켰고, "반드시 성공해서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가난은 모질었고, 아들이 성공하기 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살던 집마저 불타버렸습니다.

그 잿더미 위에서, 그는 어머니의 희생과 피를 가슴에 새기며 다짐했습니다.

"어머니가 못다 한 삶까지, 두 배로 열심히 살겠다." 그 어머니의 피, 그 희생이 아들의 심장에 불을 질렀고, 그는 정말 독하게 춤추고 노래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피'가, 아들을 '독하게' 만들었고, 그 독함이 마른 장작이 되어 성공의 불을 붙인 것입니다. 

 

성인들의 삶은 바로 이 영적인 독함의 결정체입니다.

위대한 학자이자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예로니모 성인을 보십시오.

그는 젊은 시절 로마에서 화려한 생활을 즐겼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하느님을 향한 불타는 갈망과 육적인 욕망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수난 때문에, 이 내면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독한 결심을 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시리아의 사막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 벗은 오직 전갈과 들짐승뿐이었다.

나는 날마다 눈물 흘리고 한숨지었으며, 주님께서 내게 평화를 돌려주실 때까지 바위 위에 내 몸을 던졌다." 그는 타는 듯한 태양 아래서 돌로 자신의 가슴을 치며, 육신의 욕망이라는 물기를 완전히 말려버리기 위해 자신을 학대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지독하게 죽이고 또 죽였을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그의 영혼에 성경 번역이라는 거룩한 불을 붙여주셨고, 그 불은 '불가타 성경'이 되어 천 년이 넘게 서방 교회를 밝히는 빛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성령 강림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떠나가신 뒤, 두려움 속에서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모아 꾸준히' 기도했습니다.

잡히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서, 그들은 세상으로 흩어지지 않고 함께 모여 독하게 기도하며 자신들을 말렸습니다.

목숨을 내어놓는 그 독한 결단 위에, 마침내 성령의 불길이 혀처럼 갈라지며 내려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의 불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우리 육신을 죽이는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로마 8,13) 

 

성령의 불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 적당히 타협하는 미지근한 삶에는 결코 붙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즐기는 것, 나의 게으름과 안일함을 십자가에 못 박는 독한 결단이 있을 때,

바로 그 마른 자리에 성령의 불이 임하십니다. 오늘, 내 안에서 말려 없애야 할 물기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을 끊어낼 독한 마음을 허락해 주시도록 주님께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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