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날
신명기에 의하면, 안식일은 주님의 날처럼 이집트 종살이로부터의 해방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은 본디 하느님 백성을 위한 자유의 표지로 설정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안식일은 다른 날보다 더 많은 계명과 금령을 준수하도록 규정된 날로 변해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실질적인 의미를 되돌려 놓고자 하십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품위를 유지하고 자유를 누리며, 이로써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날로 복원하고자 하십니다.
     
해방의 날!
오늘 예수님은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린” 여인 하나를 통하여 안식일이 해방의 날임을 선포하십니다. 이 여인은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던” 여인입니다. 사탄은 이 여인이 하늘을 향하여, 다시 말해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청을 올리지 못하게 했을 것이며, 병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어떤 인간적 방법과 노력도 효험이 없었던 터라 이미 오래전에 치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도록 이끌었을 것입니다. 치유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감지하신 예수님은 여인을 부르시고 말씀으로 사탄을 쫓아내시며 손을 얹어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안식일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자 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며, 여인은 이제 묶여 있던 상태에서 해방됩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이 행하신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나, 안식일의 왜곡된 의미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분개하여 이의를 제기합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압도되어 직접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군중을 향하여 이의를 제기하나,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직접 응답하십니다.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집짐승에게는 마실 물을 주거든, 하물며 하느님의 자녀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은 하느님이 그 옛날 원대한 약속을 내리신 아브라함의 딸, 그의 후손입니다. 이 여인은 해방에 대한 희망 없이 사탄에 의해 오랫동안 묶여 있었기에, 당신의 구원 능력과 신실성을 드러내기에는 오히려 주님의 날인 안식일이 가장 적합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여인을 병마의 사슬에서 풀어주고 신앙의 물을 주기에 안식일보다 더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역설적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감사의 날!
안식일은 또한 하느님을 흠숭하는 날, 창조주의 능력에 순응하는 날, 그분의 업적 앞에 찬미와 감탄을 높이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치유로 해방된 이 여인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찬양과 기쁨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결과입니다. 이처럼 찬양하며 감사드리고, 기뻐하며 감사의 마음을 높이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며, 위대한 신앙행위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오랜 시간 병마에 시달리던 여인을 치유하시며 해방을 선사하고, 그 여인과 이 자리에 함께한 군중의 마음속에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시며, 안식일을 제 자리에 돌려놓으십니다. 인간의 아집과 편협으로 빚어진 속박의 날을 해방의 날로 돌려놓으십니다.
오늘 하루,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나의 말과 행동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지향하도록 정성껏 살피는, 그리하여 이웃의 생명에도 큰 관심을 쏟는, 멋진 신앙인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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