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4,12-14: 선을 베풀어야 할 사람들에 대하여
오늘 루카 복음(루카 14,12-14)은 잔치의 초대와 관련된 주님의 가르침이다. 당시 사람들은 사회적 체면과 보답을 기대하며 잔치에 사람들을 불렀다. 그러나 주님은 그 질서를 전복하시며, 갚을 수 없는 이들, 곧 가난한 이, 불구자, 절름발이, 눈먼 이를 초대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단순한 자선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드러내는 하느님의 정의이다. 하느님 나라는 거래와 보상에 근거하지 않고, 무상의 은총과 자비에 근거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마태오 복음 강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잔치를 열 때, 부유한 자를 부르지 말라. 그들은 너를 다시 불러 네가 한 것을 갚아주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보상 얻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를 불러라. 그들은 너에게 갚지 못하지만, 그들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너를 갚아주실 것이다.”(Homiliae in Matthaeum, 50) 즉, 인간적 보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보상을 바라보며 자선을 해야 함을 강조한다.
성 암브로시오는 “자선을 행하는 것은 단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곧, 가난한 이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De officiis ministrorum, II, 28(136-138절)이라는 해석이다. 성 바실리오는 다음과 같이 꾸짖는다. “너의 곡간에 넘쳐나는 것은 네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의 것이다. 네가 입지 않는 옷은 벌거벗은 이들의 것이며, 네 창고에 쌓인 곡식은 굶주린 이들의 것이다.”(Homiliae de divite et Lazaro) 나눔은 선택적 선행이 아니라, 하느님이 맡기신 재화를 올바로 관리하는 정의의 행위임을 분명히 한다.
교리서는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을 특별한 사랑으로 돌보시며,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이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인식해야 한다.”(2443항) 교황 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에서 “가난한 이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살을 만지는 것이야말로 참된 복음화다.”(Evangelii Gaudium, 197항) 한다.
주님의 말씀은 “주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광임을 드러냅니다. 세상은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만, 신앙인은 “갚을 수 없는 이들과 관계”를 맺으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이는 단순히 덕행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방식을 닮는 길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셨듯이, 우리도 조건 없이 나누고 사랑해야 한다. 오늘 복음은 거래의 논리에서 은총의 논리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은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나누며,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더 큰 영적 보상을 기다리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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