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나서시는 하느님
군중 가운데는 세리들과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들로 자처하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유사한 유형의 비유 말씀을 통해서 이들의 투덜거림에 응답하십니다. ‘목자와 양 떼’의 표상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관계를 말하는 데에 인용되는 고전적 주제이며, 흩어졌거나 잃어버린 양들을 되찾음은 구원을 뜻하는 전통적 은유입니다. 양을 잃어버렸을 경우, 목자는 양을 찾아 이리저리 뛰는 등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쏟았던 수고는 잊어버리고, 번쩍 들어 어깨에 메고 돌아와, 그 기쁨을 이웃들과 나눕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은전 한 닢을 잃었던 어떤 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이 비유 말씀에서 예수님은 잃었던 양 또는 은전, 다시 말해서 죄인을 돌아오게 함에서 모든 것을 주도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심을 밝혀주십니다. 잃었던 것을 되찾으시는 과정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염려와 애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죄인들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공동체에서 축출했던 바리사이들과 달리, 찾아 나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은 되찾으신 것만으로 만족하십니다. 용서는 그다음 일입니다. 되찾으셨다는 기쁨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죄인들을 단죄하거나 축출하기에 앞서, 바리사이들이 마음에 꼭 담고 있어야 하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은 이 기쁨을 모든 이와 나누어, 당신의 무한한 자비를 확인하고 체험하도록 하십니다. 당신을 보내신 성부께서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용서를 통해 큰 기쁨을 누리시니, 예수님도 그들을 돌보셔야 했으며,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드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거짓 의인들’은 투덜거릴 것이 아니라, 회개로 마음을 바꾸어 하느님의 원의를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비가 선사하는 참 기쁨을 누릴 기회가, 곧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하는 초대의 말씀에 응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비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죄에서 돌아서 회개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 역시 하느님 은총의 선물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돌아서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 아니 돌아서도록 당신이 먼저 찾아 나서시는 자비하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감사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던, 그 생각과 행동 때문에 노심초사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며, 바르게 생각하고 제대로 행동하는 신앙인의 삶을 다지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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