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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07 조회수 : 186

루카 16,1-8 
 
잘 산 사람들은 잘 죽는 법도 알았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루카 16,1-8)에서 우리는 '불의한 집사'라는 당혹스러운 비유를 듣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 해고 통지를 받은 집사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주인의 빚을 탕감해 줍니다.
놀랍게도, 주인은 이 집사를 '영리하게' 대처했다며 칭찬합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은 그의 부정이 아니라, '해고'라는 심판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절박하게 움직인 그의 '영리함'입니다. 
 
이 집사와 정반대인 인물이 '부자 바보'(루카 12장)입니다. 둘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약삭빠른 청지기는 심판이 곧 온다고 믿었고, 부자 바보는 더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청지기는 '해고 통지서'를 받자마자, 자신에게 남은 '불의한 재물'로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부자 바보는 '해고 통지서'(죽음)를 상상도 못 하고 재물을 쌓아두다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라는 심판 앞에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빛의 자녀들보다 더 영리하다."라고 한탄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너는 더 이상 관리인 노릇을 할 수 없다."라는 '해고 통지서'를 받을 것입니다.
이 통지서를 미리 받아들고 삶을 바꾼 '영리한 집사'들이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은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죽음의 상인'이라 불렸습니다.
1888년, 그의 형이 죽었을 때 한 신문이 그가 죽은 줄 알고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하다." 라는 부고 기사를 냈습니다.
자신이 '죽음의 상인'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에 전율한 그는, 복음의 집사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해고 통지서'를 미리 읽은 것입니다.
그는 즉시 유언장을 수정하여, 자신의 '불의한 재물'(전 재산 94%)을 기부해 '노벨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죽음의 상인'이라는 현세의 평판을 '인류의 은인'이라는 영원한 유산으로 바꾼, 가장 영리한 집사였습니다. 
 
1912년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메이시스 백화점 소유주인 이시도르와 아이다 스트라우스 부부가 있었습니다.
"여성과 아이들 먼저!"라는 외침 속에서 아이다는 구명보트 탑승을 권유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 이시도르 곁에 남았습니다. 이시도르 역시 "다른 남자들보다 먼저 타지 않겠소." 라며 거절했습니다.
아이다는 남편의 팔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평생 함께였어요.
당신이 가는 곳에, 나도 가겠소."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갑판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자산은 '함께 죽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마지막 재산을 '영원한 사랑'과 '부부의 신의'라는 영원한 가치와 맞바꾸었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였을지 몰라도, 그들은 영원을 위해 가장 영리한 선택을 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극적인 '해고 통지서'를 받아야만 영리해질 수 있을까요?
성 베네딕토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두어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매일 스스로에게 '해고 통지서'를 발부하는 '빛의 자녀들'의 영리함입니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비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죽을 수 있다고 믿을 때, 생명은 물론이요 내가 움켜쥔 이 재물, 이 명예, 이 자존심마저도 곧
사라질 '불의한 재물'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슈워츠 교수는 '루게릭병(ALS)'이라는 '해고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는 절망하는 대신, "나는 내 죽음을 내 마지막 프로젝트로 삼겠네."라고 결단합니다.
그는 자신의 '불의한 재물', 즉 곧 사라질 '육신'과 '남은 시간'을 아낌없이 '사랑'과 '가르침'으로 베풀어 '영원한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그는 제자 미치 앨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알지만, 아무도 그걸 믿지 않아. 하지만 죽는 법을 배우면, 비로소 사는 법을 배우게 되지." 죽음이라는 '해고 통지'는 무엇이 '불의한 재물'이고 무엇이 '영원한 가치'인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까요?
'오늘 죽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이 질문은 우리가 '죽음의 상인'으로 남을지, '영원한 사랑'을 완성한 부부로 남을지 결정하게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으로 영리해져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음이 이득입니다."(필리 1,21)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만 울고 나머지는 웃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 우리만 웃고 나머지는 울면 그것이 잘 산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잘 사신 분들은 항상 잘 죽는 법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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