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의 때와 곳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바리사이들이 던진 질문, 곧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 하는 질문을 받으시고,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하는 단호한 답을 주시는 장면으로 열립니다. 바리사이들은 분명히 ‘언제’라는 시간을 여쭈었음에도, 예수님은 ‘어떻게’라는 모습을 먼저 일러주시는 것으로 답하십니다. 여기까지는 선문답처럼 보입니다.
사실, 하느님 나라의 도래 문제는 유다교에서 중요한 문제였으며, 라삐들과 묵시 문학가들은 그때를 추정할 수 있는 표징들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여왔습니다(다니 9,2 참조). 율법을 충실하게 준수하면 의인으로 판단되어 하느님 나라에 입성할 수 있다는 확신 속에 살아왔던 유다인들, 특히 바리사이들에게 이 나라는 ‘어떻게’라는 모습보다는 ‘언제’라는 시간으로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 곧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하는 말씀 속에는 ‘어떻게’와 함께 ‘언제’에 관한 답이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더 정확하게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로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다고 단정하십니다. 그러나 마음이 닫혀 있고 귀가 막혀 있던 바리사이들은 이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받아들여, 제대로 듣고 보고 깨달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적대 세력인 마귀를 쫓아내는 여러 행적과,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권위 있는 가르침을 거부하니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곧 구원의 시간은 시작되었으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이 나라를, 이 시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바리사이들과의 대화에 이어, 예수님은 이제 시선을 제자들에게 돌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를 여신 분이며, 그분은 이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마지막 때에 다시 오셔야 함을 알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의 날’이 오기 전에, 제자들을 번민 속에 몰아넣을 불행의 날들, 공포의 날들이 앞설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사람의 아들의 재림’을 인내심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러저러한 표징들을 찾으려 하고, 거짓 예언자들의 말씀 앞에 혼란을 겪기도 하겠지만,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의 종말의 시간에 앞서, 예수님은 당장 이 세대의 사람들, 나아가 당신을 따르던 사람들에 의해 조롱받고 천대받고 배척을 받으실 것이며, 제자들은 이를 목격할 것입니다. 물론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사랑이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이나, 증오와 분열을 완전하게 정복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이 바로 교회의 시간이며, 박해의 시간입니다.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신앙인은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야 하며, 마지막 때에 오실 ‘사람의 아들’을 맞이할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맞이할 준비 과정에서 고통을 오히려 큰 버팀목으로 받아들일 것을 이르십니다. 온갖 반대와 배척으로 하느님 나라를 세우신 주님의 가르침이며, 동시에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시는 간절함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고 지내는 가운데, 지상에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맛보는, 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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