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7,20-25: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께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는지를 묻는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보아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21절)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는 이미 예수님 안에서 현존하는 실재이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는 말은 곧 예수님 자신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성 치프리아노는 “그리스도를 모시는 이의 마음 안에 하느님 나라가 머무른다.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De Oratione Dominica 13)고 가르쳤다.
결국 하느님 나라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상태이며, 그것은 인간의 내적 변화 안에서 시작된다. 성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즉, 하느님 나라는 외적인 모습보다, 성령의 내적 열매로 드러난다. 우리가 정의를 실천하고, 평화를 이루며, 성령 안에서 기뻐할 때 이미 하느님 나라는 우리 삶 가운데 현존한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와 있으나,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신비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만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25절). 십자가는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열렸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주권과 사랑의 힘을 본다.”(Adversus Haereses V, 20,1)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자리 잡으려면, 우리 역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
감사와 사랑,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가정은 이미 하느님 나라다. 반대로 불의, 분열, 미움이 지배하는 곳은 이미 지옥의 씨앗을 키우는 공간이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를 기다린다는 것은 단순히 종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은총에 응답하여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권고한다. “그대가 가난한 이를 도울 때, 하느님 나라는 이미 그대 안에 있다. 그대가 분노를 참을 때, 하느님 나라는 그대 안에서 다스린다. 하느님 나라는 먼 곳이 아니라, 그대의 선택 안에 있다.”(Hom. in Mt. 14,3)
하느님 나라는 먼 미래에 갑자기 떨어지는 번개처럼 올 종말의 사건일 뿐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하느님의 통치다. 그 나라는 성령의 열매로, 십자가의 길을 통해 드러나며, 우리의 삶 안에서 사랑과 감사, 정의와 평화의 실천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이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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