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형제인 두 태아가 어머니 자궁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너무 멋져! 이곳에서의 시간이 끝나면, 우리는 드디어 빛 속으로 나가 노래하고 춤추고 맘껏 먹을 수 있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태어난 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고 누가 그래? 먹고 춤을 춘다고? 웃기지 마! 우리 음식은 탯줄에서 나오는데, 걸어 다니고 춤추기에는 탯줄이 너무 짧단 말이야.”
“뭐 굳이 따지고 들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런데 태어난 후에 삶이 없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주 간단해. 그곳에서 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모두가 엄마 얘기를 하지만, 엄마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과학적으로 말하면, 전부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
지금의 우리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과학적으로 죽음 이후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직접 부활하신 것입니다. 태아 상태에서 지금 삶을 이해할 수 없듯이, 이 세상 삶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기란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알게 되었고, 굳은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더욱 성실하고 충실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6)라면서 성전의 멸망을 예고하십니다. 실제로 기원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가 이루어집니다. 제자들은 이 충격적인 사건이 언제 일어나고, 또 그 표징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세상은 늘 전쟁, 재난, 거짓 가르침으로 혼란스러울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서 두려워하거나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의 이름 때문에’ 받는 박해를, 복음을 ‘증언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비록 순교의 위협과 가장 가까운 이들의 배신을 겪을지라도, 하느님의 궁극적인 보호하심(“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을 신뢰하며 ‘믿음의 인내’로써 구원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반대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를 믿지 못하면서, 믿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무시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 믿음의 인내가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의 명언: 타인이 건네는 칭찬뿐 아니라 비난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느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오래 일할 수 있다(이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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