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아라!
오늘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의 마지막 길, 예리코에 이르십니다. 앞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에 대하여 세 번에 걸쳐 예고를 하셨으나, 제자들은 아직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하는 상태, 눈이 먼 사람처럼 보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예리코 성문 가까이에서 구걸하던 걸인들, 그들 가운데 한 눈먼 이가,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터에, 다른 사람들보다 강렬한 느낌을 받아 무엇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리라 느낍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줍니다. 군중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업적을 드러내시는 장면은 목격했으나, 그분의 진정한 신원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저 ‘나자렛 사람 예수님’ 정도입니다. 그러나 눈먼 사람은 좀 더 멀리 보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영이 이 사람의 마음속에 진리를 심어주자, 믿어 고백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이 소경은 오셔야 할 분이 ‘다윗의 자손, 예수 메시아’이심을 선포하며 외칩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람들은 이 사람을 잠자코 있게 하려 하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더욱 아름다운 소리로 외칩니다.
늘 성령의 움직임을 의식하고 있던 예수님은 군중의 함성 속에 묻힐 뻔했던 눈먼 이의 외침을 들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메시아로 지칭됨을 더는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이제 메시아로 처신하시며,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신앙을 점검하고자 질문을 던지십니다. 예수님은 늘 당신의 의지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당신께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는 자격과 권리를 사람에게 넘겨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눈먼 이는 망설임 없이 유일하며 간절한 바람인 치유를 소리 높입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눈먼 이는 이제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릅니다. 이 호칭은 초대교회 신자들이 찬미가를 부를 때 외치던 호칭,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의 호칭입니다.
치유 요청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청하는 사람에게 주실 것이며, 눈먼 이들을 보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음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보아라.” 눈먼 이는 육체적인 치유만을 요구했지만, 예수님은 영적인 치유까지 선사해주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로 즉시 보게 된 눈먼 이는 치유의 능력을 보여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군중 또한 찬미가를 부르며 이 사람과 함께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모습, 곧 교회의 모습을 미리 내다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처럼 찬미하며 따라가는 공동체로 정의됩니다.
눈먼 이의 치유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의 육체적 치유를 넘어, 보지 않고 살거나 눈을 감고 보지 않으려 했던 예수님의 제자들, 초대교회 신자들, 그리고 우리의 부족한 신앙 삶을 치유해 주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부족을 느낄 때마다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청하는 용기와, 치유의 은총과 함께 “찬양하며 따르는” 자세가 필요할 뿐입니다.
오늘 하루, 청하는 우리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 주시고, 부족한 가운데서도 정성을 다하여 따를 수 있도록 늘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보람찬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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