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18,35-43: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서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 장애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길이 막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경은 육신의 눈먼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마음의 눈이 먼 것이라고 가르친다. 오늘 복음의 눈먼 거지는 단순히 시력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열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예리코로 들어가실 때, 길가에 앉아 있던 눈먼 이가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38절) 하고 간절히 부르짖는다. 군중은 그를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하지만, 그는 더 크게 소리친다. 그의 끈질긴 부르짖음은 단순한 시력 회복을 향한 갈망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으신다. “네가 나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41절). 그는 단순히 말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41절) 예수님은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42절) 하고 응답하시며, 그의 눈을 열어 주신다. 그 결과 그는 단순히 눈을 뜬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다. 이는 육신의 눈과 영혼의 눈이 동시에 열린 사건이었다.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이며, 인간의 삶은 하느님을 보는 것”(Adversus Haereses, IV, 20,7)이라 했다. 오늘 복음의 눈먼 이가 바로 그 증거이다. 육신의 눈이 열리자,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삶, 곧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빛을 보기를 원했지만, 단순히 눈의 빛이 아니라 마음의 빛을 보았다. 그는 세상을 보는 눈보다 믿음을 보는 눈을 먼저 얻었다.”(Sermo 88) 교리서도 우리 신앙의 여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마음의 눈을 열어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다.”(2715항 참조)
오늘 눈먼 이가 군중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38절) 하고 부르짖은 것처럼, 우리도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제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41절) 이것은 단순히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믿음의 눈, 사랑의 눈, 감사의 눈을 달라는 청원이다. 또한 그는 눈을 뜬 뒤 곧바로 예수님을 따랐다. 우리의 기도도 단순한 청원에서 멈추지 않고, 응답을 받은 뒤에는 제자의 길로 이어져야 한다.
오늘 눈먼 이는 우리 신앙인의 모범이다.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부르짖었고, 응답을 받자,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우리도 같은 은총을 청해야 한다. “주님, 저희의 눈을 열어 주소서. 세상의 눈먼 삶에서 벗어나, 믿음의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따르게 하소서.” 아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