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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17 조회수 : 120

루카  18,35-43  
 
불가능한 소망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야! 
 
 
찬미 예수님!
캐나다 몬트리올의 성 십자가 수도회에 '알프레드 베셋'이라는 청년이 입회했을 때, 수도원 장상은
그를 받아주며 추천서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그는 오늘 몸이 아파 일은 거의 할 수 없지만,
기도는 열심히 하는 거룩한 영혼입니다."
그의 이름은 '안드레'가 되었고, 그가 맡은 소임은 노트르담 대학의 '문지기'였습니다.
그는 평생을 그 자리에서 문을 열고 닫고, 방문객을 안내했습니다.
글도 겨우 읽을 줄 알았고, 몸은 평생 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는 가장 연약하고 '쓸모없는 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보잘것없는 수사의 마음속에는 화산처럼 타오르는 '믿음의 불'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양아버지이신 '성 요셉'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왜 하필 성 요셉이었을까요?
안드레 수사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과 성모님을 맡기실 정도로 신뢰하신 분이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청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분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병자들이 그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 환자, 다친 아이들이었습니다.
안드레 수사는 자신이 고쳐준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똑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성 요셉께 가십시오.
그분께 기도하십시오!" 
 
그는 성 요셉 성상 앞 램프의 기름을 조금 묻혀 환자에게 발라주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이 포기한 불치병 환자들이 낫고, 말기 암 환자들이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몬트리올의 기적'이라 부르기 시작했지만, 그는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성 요셉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안드레 수사에게 몰려든 이유는, 그가 '불가능한 청'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드레 수사를 단순한 문지기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의 대리자'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증거가 바로 지금 몬트리올 성 요셉 대성당의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천 개의 목발과 보조기들, 바로 '성 요셉의 벽'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리코의 눈먼 이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평생 청했던 것은 고작 "적선해 주십시오", "한 푼만 주십시오"라는 '가능한 청'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 그는 자신의 평생 기도 제목을 바꿉니다.
그는 자신의 병이 의사 수준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저분이라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람들이 그를 꾸짖으며 잠자코 있으라고 했습니다.
"시끄럽다! 네 주제에 감히 무엇을 청하느냐?"
하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시고 그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예수님은 그에게 '불가능한 청'을 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는 돈(가능한 청)이 아니라 '다시 보는 것'(불가능한 청)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의 '불가능한 청'이 그의 믿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신부인 저에게 안수를 청하는 분들도 다양합니다. 감기 환자부터 말기 암 환자까지 옵니다.
병원에 가면 나을 수 있는 것으로 안수를 청하는 분들은, 저를 신부님 말씀대로 '의사 수준'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가 눈물로 안수를 청할 때, 그분은 저를 '하느님의 대리자'로 보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오산 성당에 있을 때였습니다.
한 어머니가 저에게 달려와, 막 숨을 거둔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곧 영안실로 들어가야 할, 이미 싸늘해진 아들의 시신이었습니다.
저는 그 어머니와 함께 영안실 문 앞에서, 이미 의학적으로는 끝난 그 아들의 몸에 손을 얹고
'불가능한 안수'를 했습니다.
물론, 아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저는 기적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 '어머니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위로해 주는 사람' 수준으로 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느님의 대리자'로 불렀습니다.
그녀의 그 '불가능한 청'은, 비록 인간적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이미 가장 위대한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는지가 바로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 하나쯤은 꾸준히 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을 '나의 아버지'로, '전능하신 하느님'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주일학교 교사할 때 제가 야단쳐서 도망간 아이가 되돌아오기를 청했습니다.
들어주셨습니다.
술내기에서 이기게 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들어주셨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쌓여갔습니다.
지금은 모든 불가능한 것들도 청합니다.
들어주시는 것은 주님 마음이지만, 그것을 청할 수 있는 믿음은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불가능한 청'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오늘 복음의 눈먼 이처럼, 안드레 수사처럼, 그리고 오산 성당의 그 어머니처럼 당당하고 꾸준하게 기도하십시오.
그 '불가능한 청'을 통해,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을 구원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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