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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0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20 조회수 : 108

복음: 루카 19,41-44: 네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통곡하신다. 그분의 눈물은 단순한 인간적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 평화의 때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하는 데서 오는 구원의 아픔이다. 그 눈물은 단지 2천 년 전 한 도성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각자의 마음을 향한 주님의 눈물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42절) 평화(shalom)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누리는 충만한 삶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분의 초대를 거부했다. 예수님은 서기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성전과 도성이 파괴될 것을 예고하신다. 이는 하느님 은총의 때를 알아보지 못한 영적 파멸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44절) 즉, 하느님이 다가오시는데도 눈이 가려져 그것을 보지 못한 비극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 구절을 묵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다. 이는 그 도성이 파괴될 것을 아셨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들의 구세주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멸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10,113) 성 아우구스티노는 주님의 눈물을 해석하며 말한다. “주님의 눈물은 곧 하느님의 자비이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울고 계신다. 우리가 죄 안에 있을 때 그분은 우리보다 더 깊이 우리의 비참함을 아신다.”(Sermo 362,1) 즉, 주님의 눈물은 심판의 눈물이 아니라,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사랑의 눈물이다. 사목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인류 역사의 중심과 정점은 주님의 파스카이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은총의 때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10항) 교리서는 “하느님은 끊임없이 인간의 마음을 두드리시며, 자유롭게 응답할 것을 기다리신다.”(2567항)고 가르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네 삶 안에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있는가?” 예루살렘이 눈이 가려 메시아를 거부했듯이, 우리도 일상에서 하느님의 방문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있으면 은총의 때는 그냥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눈을 열어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은 참 평화로 충만해진다. 
 
예루살렘을 보며 흘리신 주님의 눈물이 더 이상 우리를 향한 눈물이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매 순간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응답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간직하도록 해야 한다. “주님, 저희 눈을 열어 주시어, 평화를 가져오는 길을 알아보게 하소서. 은총의 때를 놓치지 않고, 당신의 초대에 응답하여 늘 깨어 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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