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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25 조회수 : 211

루카 21,5-11  
 
불안하면 아무나 구원자로 보인다 
 
 
영국의 전래 동화 중에 ‘치킨 리틀(Chicken Little)’이라는 아주 유명한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작은 닭 한 마리가 숲을 걷다가 떡갈나무 위에서 떨어진 도토리에 머리를 '콩' 하고
맞습니다.
깜짝 놀란 닭은 생각합니다.
"아니, 머리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다니!
이건 분명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한 거야!" 
 
공포에 질린 치킨 리틀은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만나는 오리, 거위, 칠면조에게 소리칩니다.
"큰일 났어! 도망쳐! 하늘이 무너지고 있어! 내가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머리로 맞았어!"
동물들은 그 닭의 확신에 찬 공포에 전염되어, 이유도 모른 채 뒤따라 달리기 시작합니다.
거대한 공포의 행렬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굴 앞에 앉아 있던 여우(Foxy Loxy)가 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 어디 가니?"
"하늘이 무너지고 있어요! 왕에게 알려야 해요!" 
 
여우는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왕에게 가는 지름길을 내가 알아. 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면 안전해."
공포에 질려 이성을 잃은 동물들은 여우를 구원자로 착각하고 제 발로 여우 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든 '거짓 공포'가 그들을 포식자의 식탁 위로 배달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거짓 예언자들과 사이비 종교, 그리고 세상의 장사꾼들은 '치킨 리틀'의 우화처럼 우리에게 달려와 소리칩니다.
"경제가 무너진다! 전쟁이 난다! 건강이 무너진다! 지금 당장 대비하지 않으면 당신은 끝장이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불안'**을 자극하여 지갑을 열게 하거나, 영혼을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라고 부릅니다.
보이스피싱범들이 전화를 걸어 "당신 아들이 납치됐다, 당장 송금하라"고 소리 지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뇌에서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를 자극하면,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전원이 꺼지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공포를 주입해야만 사기가 성공합니다. 
 
"이 부적을 안 쓰면 아들이 다친다", "이 헌금을 안 내면 사업이 망한다", "지금 당장 여기로 오지 않으면 지옥 간다." 기억하십시오. **"이것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불안을 조장하여
무언가를 요구한다면, 그는 100% 여우 굴 앞에 서 있는 사기꾼입니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협박하여 사랑을 받아내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전이 무너지고, 전쟁과 지진이 일어나고, 전염병이 돌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십니다.
겉으로 보면 이것도 '공포 조장'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결론은 전혀 다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큰일 났다!
그러니 나를 따라라(돈을 내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루카 21,9) 
 
예수님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며 현실을 왜곡하지 않으십니다.
성전은 무너질 것이고 재난은 닥칠 것입니다. 그것은 '팩트(Fact)'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팩트 너머의 '진리(Truth)'를 주십니다.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 21,18).
진리를 말하는 자는 현실의 비극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평화를 심어줍니다.
이것이 참된 목자의 목소리입니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의 일입니다.
거리에는 "하느님이 분노하셨다! 종말이 왔다!"고 외치며 공포를 파는 자들이 넘쳐났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질려 전 재산을 바치며 여우 굴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병상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던 영국의 은수자 율리아나(Julian of Norwich)는 예수님의 환시를 봅니다.
그녀는 손바닥만 한 작은 개암(Hazelnut) 하나를 보았는데, 주님께서는 "이 작은 것도 내가 사랑하여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흑사병이라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역사에 남을 위대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죄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일들이 다 잘될 것이다
(All shall be well, and all shall be well, and all manner of thing shall be well)." 
 
율리아나 성녀는 재난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재난보다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협박하는 대신, "하느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니 안심하십시오"라는 평화를 전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목소리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세상은 끊임없이 '치킨 리틀'처럼 호들갑을 떨며 우리에게 달려올 것입니다.
뉴스는 전쟁을 팔고, 광고는 노후의 비참함을 팔고, 가짜 종교는 지옥을 팝니다.
그들은 대가로 여러분의 돈과 시간을 요구할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불안을 주며 대가를 요구하는 자는 장사꾼이고, 평화를 주며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는 분은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이미 모든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주는 두려움에 지불할 비용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을 불안하게 만드는 모든 목소리를 끄십시오.
그리고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만을 켜십시오.
그 안에 참된 구원이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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