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24,37-44: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
1. 서론: 주님의 오심과 교회의 기다림
대림 시기는 오심의 신비(mysterium Adventus)를 기념하는 전례 시기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오심”을 고백한다. 첫째, 역사 안으로의 오심(강생, incarnatio), 둘째, 은총 안에서 매일 우리에게 오심, 셋째, 영광중에 다시 오심(재림, parousia).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 오셨고, 또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그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오신다. 매일의 오심을 거부하는 자는 마지막 오심에 놀랄 것이다.”(Enarrationes in Psalmos, 95,14) 따라서 대림의 ‘깨어있음’은 단순히 미래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매일 오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맞아들이는 적극적 신앙의 자세를 뜻한다. 교리서(524항)는 대림의 영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교회는 매년 대림 시기를 지내며 메시아를 기다렸던 이스라엘의 기다림을 되새기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인내와 희망을 새롭게 한다.”
2. 복음의 핵심 구조: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예수께서는 노아의 시대를 회상시키며, 불시의 심판과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하신다(마태 24,37-39).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 하느님의 징조를 알아보지 못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은 죄악에 빠져 살면서도 평화를 즐겼다. 그들은 멸망의 날이 오기 전까지 아무 것도 깨닫지 못했다. 영적 잠은 육신의 잠보다 더 위험하다.”(Homiliae in Matthaeum, 77,2)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잠에서 깨어나라.”(로마 13,11) 촉구하신다. 이 “잠”은 단지 게으름이 아니라, 하느님 현존에 대한 무관심, 세속적 안일함, 영적 무감각을 의미한다. 깨어있음은 따라서 신앙의 실천적 태도이다. “하느님의 뜻을 일상에서 식별하고 실천하는 능동적 준비”이다.
3. 노아의 방주와 구원의 표징
노아의 방주는 성경 안에서 구원의 상징이다(창세 7,11-23). 오리게네스는 노아의 방주를 교회의 예형(typos Ecclesiae) 으로 해석했다. “노아의 방주는 구원의 표지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방주처럼, 교회는 세상의 격랑 속에서 믿는 이들을 품는다. 방주 밖에는 구원이 없었다.”(Homiliae in Genesim, 2,4) 대림의 기다림은 곧 교회 안에서 구원을 준비하는 삶이다. 교리서(845항)는 이 점을 분명히 한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모든 구원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통하여 온다.”
4.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41절)
이 구절은 단순히 선택의 무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본질이 드러남을 뜻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풀이한다. “그날에는 인간의 마음에 숨은 것이 드러날 것이다. 겉으로는 함께 있었으나, 마음은 함께하지 않았던 자들이 구별될 것이다.”(Sermo 93,3) 심판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행위를 감시하는 형식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선택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교리서(678gkd)는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최종 심판은 인간의 행위와 마음의 비밀을 드러낼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에 응답한 사람은 생명으로 들어가고, 거부한 사람은 스스로를 정죄한다.”
5. “깨어있어라.”: Vigilantia의 신학
예수의 명령 “깨어있어라.”(42절)는 단순한 경계심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영적 주의력을 의미한다. 교리서(2730항)는 이렇게 말한다. “깨어있음은 마음의 순수함을 지키는 행위이며,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고 유혹을 분별하는 태도이다.” 교부들은 깨어있음의 의미를 “사랑의 긴장 상태”로 이해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랑은 잠들지 않는다. 깨어있는 마음이란 사랑으로 타오르는 마음이다.”(Sermo 254,3) 이 사랑의 긴장은 바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향한 교회의 영혼 태도이다. 사목 헌장(39항)은 이 긴장을 종말론적 희망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세상 안에서 이미 그 하늘의 씨앗을 키운다. 대림의 기다림은 이 희망을 실천하는 교회의 사명이다.”
6. 바오로 사도의 권고: “지금은 잠에서 깨어날 때입니다.”(로마 13,11)
바오로는 대림의 신학을 요약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원은 시작되었고,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 ‘이미와 아직 아님’(already–not yet)의 신학이 바로 대림의 시간성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밤은 이미 물러갔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이유는 우리의 눈이 감겨 있기 때문이다.”(Homiliae in Romanos, 23) 이 깨어남은 도덕적 결단이며, 성화(sanctificatio)의 길이다. 교리서(2849항)는 “깨어있음”을 유혹을 이기고 선을 실천하는 은총의 협력으로 본다.
7. 결론: 매일 오시는 그리스도
대림의 기다림은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매일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는 훈련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 안에서, 성사 안에서, 이웃 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공동체적 사랑 안에서 매일 오신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로 마무리하자. “그대가 그리스도를 매일 맞이하지 않는다면, 그분이 마지막에 오실 때 그대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Enarrationes in Psalmos, 9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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