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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1-30 조회수 : 164

 마태오 24,37-44 
 
우리는 깨어있지 못한 핑계를 댈 수 없다   
 
 
영화 '아폴로 13호'를 보셨습니까?
달을 향해 가던 우주선의 산소통이 폭발하여, 우주비행사들은 차가운 우주 한복판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그들이 살아서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지식이나 경험, 혹은 "살고 싶다"는 의지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구에 있는 **'휴스턴 관제센터'**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뿐이었습니다.
관제센터가 "전원을 끄라"면 끄고, "켜라"면 켰습니다.
그들은 우주선의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관제센터는 모든 데이터를 보고 생환 경로를
계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떤 비행사가 "내 생각은 다른데요?
내 방식대로 살아볼래요."라며 지시를 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영원한 우주 미아가 되어 소멸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그곳에 보낸 이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것, 그것만이 나중에 살아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이것이 생존의 법칙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를 말씀하십니다.
홍수가 닥치기 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상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을까요?
누구나 자기 뜻을 따라 사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바로 '관제센터(창조주)'의 지시에 귀를 닫은 것입니다.
오직 노아만이 하느님의 뜻(방주 건설)에 귀를 기울이고 그 지시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미 어둠이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나를 이 세상에 보낸 분, 나를 다시 부르실 분의 뜻을 찾고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깨어있음'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의무를 잊고 "나는 몰랐다, 죄 없다"며 핑계를 댑니다. 
 
임언기 신부님이 만난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간암 말기로 임종을 앞둔 분이었는데, 30년 이상 냉담 중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고해성사를 주려고 십계명과 칠죄종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도와주려 했지만, 할아버지는 끝내 입을 다물고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부님이 포기하고 나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천둥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 죄 없어!" 
 
그는 정말 죄가 없었을까요?
그는 자신이 세상의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떳떳하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주의 뜻(주일 미사, 기도, 사랑)을 30년이나 무시하고 산 것, 관제센터와의 교신을 끊고 제멋대로 산 것 자체가 가장 큰 죄임을 그는 몰랐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관계가 끊어진 것 자체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거룩해 보이는 성인들도 이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위대한 성서학자 성 예로니모는 꿈속에서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당당했습니다.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거짓말 마라!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키케로 추종자다.
너는 성경보다 로마 문학을 더 사랑하지 않느냐!"
그는 주님의 뜻보다 자신의 지적 허영심을 따르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닫고 전율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도 수녀로 20년을 살았기에 구원은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환시를 통해 본 '자신이 갈 지옥의 자리' 앞에서 그녀는 경악했습니다.
봉쇄 구역에서 사람들과 잡담하며 세속적인 즐거움을 누렸던 그 미지근함이, 곧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길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만날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의 부끄러운 체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 주님께서 신학교로 부르시는 것을 느꼈지만 저는 거부했습니다.
세상의 성공과 쾌락이라는 '제 뜻'을 따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건방지게 "확실한 표징을 주시면 믿겠다"며 버텼습니다. 
 
어느 날 새벽, 술기운에 성당에 올라갔는데 성모상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저를 뚫어지게
내려다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고꾸라져 벌벌 떨며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내가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있는데 거룩한 분을 만난다면, 그것은 반가움이 아니라 공포구나."
진리는 속일 수 없습니다.
제 양심은 제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분 앞에서는 것이 죽을 만큼 두려웠던 것입니다. 
 
제가 비로소 주님을 만날 용기를 낸 것은 신학교에 입학한 후였습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그분의 뜻에 제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성체를 영하는데 주님께서 제 영혼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는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나는 네게 다~ 주었다." 
 
제가 제 고집을 꺾고 관제센터의 지시(부르심)를 따르려 했을 때, 비로소 다 주시는 주님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듣고 따름만이 그분을 만날 유일한 준비요, 깨어있음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결코 '갑자기' 오시지 않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완성했을 때 홍수가 났듯이, 우리가 그분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여 준비되었을 때 오십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거창한 영웅이 되고 싶었으나, 수녀원에 갇힌 처지를 핑계 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거창한 업적이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핀 하나를 줍더라도
사랑으로 줍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수녀에게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고, 짜증 나는 소리를 참아내며
'작은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내 뜻을 꺾고 하느님의 뜻(사랑)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깨어있는 삶입니다. 
 
아폴로 13호의 승무원들이 살기 위해 관제센터의 지시에 온 신경을 집중했듯이, 우리도 살기 위해 주님의 뜻에 귀를 기울입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 지시를 따를 때, 우리는 죽음 너머의 고향으로 무사히 귀환하여 주님을 웃으며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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