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9,35-10,1.6-8: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자비로움과, 그분이 제자들을 선택하고 파견하시는 장면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9,36절) 그들을 가엾게 여기셨다. 주님의 마음은 언제나 고통받는 이들에게 기울어 있으며, 바로 그 연민에서 사도의 소명이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9,37절)고 말씀하시며, 하느님께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주어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며, 마귀를 쫓아내게 하신다.
오리게네스는 이 본문을 주해하며 “추수할 것은 많다.” 말씀을 인류의 영혼들에 대한 주님의 갈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일꾼이 부족한 것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영혼을 돌볼 준비가 된 목자가 부족함을 의미한다고 했다.(Comment. in Matth. X,17) 성 그레고리오 교황은 목자의 사명을 이렇게 설명한다. “참된 목자는 양들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삼는다. 양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그가 가진 어떠한 가르침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Regula Pastoralis II,5) 아우구스티노는 제자들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10,8)는 말씀을 주해하며, 참된 사도의 삶은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Sermo 100,1). 교리서는 복음 선포와 자비의 행위를 떼어낼 수 없는 사명으로 제시한다. 즉,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동일한 소명이다(2447항). 선교 교령은 선교를 “그리스도의 명령을 이어받은 교회의 본질적 임무”(5항)로 설명하며, 모든 신자가 그 사명 안에 참여한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오늘도 군중을 바라보시며 가엾이 여기신다. 세상은 여전히 영적 굶주림과 상처로 가득 차 있으며, 주님은 우리를 그 치유와 추수의 일꾼으로 부르신다. 주님의 부르심은 특별한 소수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세례받은 모든 이는 주님의 제자이며, 파견받은 선교사다. 우리가 가진 은총은 거저 받은 것이기에, 거저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사명을 수행하는 힘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권능에 있다는 것이다. 제자들 가운데 배반자 유다조차도 권능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약함과 불충 속에서도 주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놀라운 진리를 보여 준다. 대림 시기를 지내며,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 동시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세상 속으로 파견하시어, 그분의 자비를 드러내는 일꾼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신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각자의 삶 자리에서 주님께 받은 은총을 거저 나누며, 이 시대의 추수꾼이 되어야 한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파견하시도록 기도하며, 양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그분의 마음을 닮아 살아가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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