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8,12-14
그렇게 자녀가 되어간다
태양 형제, 달 자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남긴 아름다운 기도문 태양의 찬가를 아십니까?
그는 이 노래에서 태양을 형님이라 부르고, 달과 별을 누이라 부릅니다.
심지어 바람과 불, 물과 땅, 그리고 죽음조차도 형제자매라고 불렀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는 미치광이거나 시인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무생물인 해와 달과 형제가 될 수 있습니까?
하지만 프란치스코에게 이것은 문학적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뼈에 사무치는 영적 실재였습니다.
그가 깨달은 진리는 단순했습니다.
"나를 만드신 분도 하느님이고, 저 태양을 만드신 분도 하느님이다.
우리는 한 아버지에게서 난 한 식구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자, 아버지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남이 아니라 내 형제요 자매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가 되어가는 첫걸음입니다.
생명에 대한 외경:
이 마음을 가졌던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입니다.
그는 밀림 속에 병원을 지을 때, 인부들이 땅을 파다가 개미 떼를 발견하면 공사를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개미들이 안전하게 이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길을 돌아가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까짓 벌레가 뭐라고 공사를 지체합니까?"라고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슈바이처는 말했습니다.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들 가운데서 살려고 하는 생명입니다."
그가 개미를 밟지 못한 것은 개미가 귀여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작은 생명 안에 깃든 창조주의 숨결,
즉 아버지의 서명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자연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 가족을 사랑합니다.
사랑은 이렇게 가장 먼 곳(하찮은 미물) 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곳으로 흘러들어와 완성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 가족만 사랑하는 사람은 이기심에 갇혀 타인과 자연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당에서 서로를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정말 옆에 앉은 분을 내 형제처럼 여기십니까?
우리는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 하느님을 온전한 아버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니, 아버지가 만드신 작품들도 소중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화] 낡은 바이올린을 선택한 집사
여기, 진짜 자녀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녀 없이 병들어 죽어가던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외아들은 이미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임종을 앞둔 주인은 평생 자신을 위해 일해 준 식솔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내가 떠나기 전에 너희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이 집에 있는 귀중한 물건 중 딱 하나씩만 골라 가져가거라."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그들은 앞다투어 가장 비싼 물건들을 집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천만 원짜리 그랜드 피아노를 찜했고, 어떤 사람은 최신형 전자기기를, 어떤 사람은 대리석 식탁을, 어떤 사람은 금고 속에 있던 패물을 챙겼습니다.
모두가 '돈이 되는 것'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가장 나이 든 늙은 집사는 구석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낡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집어 들었습니다.
줄도 끊어지고 볼품없는 악기였습니다.
주인이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아니, 자네는 왜 하필 그 쓸모없는 것을 가져가려나?
저기 금송아지도 있는데." 늙은 집사는 바이올린을 소중히 품에 안으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주인어른, 이 바이올린은 먼저 떠난 도련님께서 생전에 가장 아끼시던 것입니다.
도련님이 이것을 켜실 때 주인어른께서 얼마나 행복해하셨는지 저는 기억합니다.
저는 도련님이 너무나 보고 싶고, 그분을 사랑했던 주인어른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서
이것을 택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주인의 '재산'을 사랑했지만,
이 노인만이 주인의 '마음'을 사랑했고 주인이 사랑했던 '아들'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주인은 변호사를 불러 유언장을 고쳤습니다.
"내 전 재산을 이 집사에게 상속한다.
그가 내 아들을 기억하는 유일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복음]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가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흔아홉 마리 양을 남겨두고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바보 같은 짓입니다. 1마리보다 99마리가 더 비싸니까요.
하지만 하느님 아버지께는 그 한 마리가 그냥 '가축'이 아닙니다.
당신이 직접 빚어 만드신, 대체 불가능한 '자식'입니다.
우리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길거리에 쓰러진 노숙자, 나에게 상처 준 이웃, 성당에 나오지 않는 냉담 교우... 그들은 낡은 바이올린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치가 없다고 버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아버지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 안에는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핏값이 서려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아버지가 아끼시는 그 낡은 바이올린을 쓰레기통에 던질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것이 바로 자녀의 마음입니다.
[결론] 벤야민을 잃으면 아버지가 죽습니다
구약 성경의 요셉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형들은 과거에 요셉을 시기하여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식량을 구하러 이집트에 왔을 때, 요셉은 형들을 시험합니다.
막내 벤야민을 도둑으로 몰아 잡아두려 한 것입니다.
그때 과거에 요셉을 팔자고 주도했던 유다가
나섭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나리, 제발 저 아이를 보내주십시오.
저 아이가 돌아가지 않으면 제 아버지는 슬픔으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목숨과 저 아이의 목숨은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차라리 저를 종으로 삼으시고 아이는 보내주십시오."
유다는 벤야민을 끔찍이 사랑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벤야민을 잃으면 겪게 될 '아버지의 고통'을 알았기에, 아버지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요셉은 방성대곡하며 형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입니다.
유다가 비로소 아버지의 참된 아들이 되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앙생활은 이렇게 자녀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내 눈에 보기 좋은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아직 남입니다.
하지만 내 눈엔 별로여도, 아버지가 사랑하시기에 나도 소중히 여기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오늘 여러분 곁에 있는 타인을 바라보십시오. 그가 바로 아버지가 찾고 계시는 잃어버린 양이고, 주인이 아끼시는 낡은 바이올린입니다. 그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러면 아버지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상속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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