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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12 조회수 : 162

 마태오 11,16-19 
 
국소 마취된 신앙: 손끝의 쾌락에 갇혀 심장의 고통을 잊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이들이 손에 잡히는 것,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에 행복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영화 『에비에이터』의 실제 모델이자 당대 최고의 억만장자, 영화 제작자, 비행사였던 하워드 휴즈의 삶을 들여다봅시다.
그는 젊은 시절, 세상 모든 남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을 다 가졌습니다.
막대한 부, 하늘을 나는 명예, 할리우드 여배우들과의 염문까지, 그의 '손끝'에는 늘 쾌락과 성공이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어땠을까요? 
 
그는 세균 공포증과 강박증이라는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펜트하우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그는 발가벗은 채 지냈습니다.
세균이 옮을까 봐 티슈 상자를 신발처럼 신고 뒤뚱거리며 걸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소유했으나, 정작 마음의 평안은 단 한 조각도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육체의 감각과 욕망에만 치중하느라 영혼의 행복에는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그의 마지막은, 화려한 펜트하우스가 사실은 차가운 감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혹시 '국소 마취된 신앙인'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수술할 때 국소 마취를 하면, 몸의 다른 부분은 멀쩡한데 딱 그 부분의 감각만 사라집니다.
영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욕망'이라는 마취제를 맞고 영혼의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이를 저는 '초점의 오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마치 욕망이라는 현미경으로 눈앞의 이익만 확대해서 보느라, 저 드넓은 하늘을 보여주는 망원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꼴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지혜'란 무엇일까요? 
 
지혜는 단순히 똑똑한 머리가 아닙니다.
지혜란, 손끝의 찰나적인 쾌락을 행복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전체, 즉 '마음의 행복'을 바라볼 줄 아는 눈입니다.
부분에 매몰되지 않고 전체를 보는 능력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까?"라고 탄식하십니다.
장터에 앉아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아이들. 왜 그들은 반응하지 않을까요?
귀가 먹어서가 아닙니다.
자기들만의 놀이, 자기들만의 욕심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 타인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할 '심장의 감각'이 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무감각, 아케디아(Acedia)입니다. 
 
이렇게 손끝의 욕망에만 집중하며 국소 마취된 채 살아가는 이들이 겪게 되는 비극을 모파상의 소설 『목걸이』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주인공 마틸드는 가난하지만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어느 날 파티에 초대받은 그녀는 돋보이고 싶은
허영심, 즉 '손끝의 쾌락'을 위해 부자 친구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립니다.
파티에서의 하룻밤은 꿈처럼 화려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 부러움, 찬사... 하지만 그 영광은
잠시뿐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걸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똑같은 목걸이를 사서 돌려주기 위해 막대한 빚을 집니다.
그리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무려 10년 동안 하녀처럼 일하며, 고운 손은 거칠어지고 얼굴은 늙고 추해집니다.
10년 후, 빚을 다 갚고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난 마틸드는 충격적인 진실을 듣습니다.
"어머, 마틸드! 그 목걸이는 가짜였어.
기껏해야 500프랑밖에 안 되는 모조품이었다고!" 
 
보십시오. '진짜 행복'이 아닌 '가짜 욕망'을 좇은 대가는 이토록 참혹합니다.
찰나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청춘을 낭비해 버린 것입니다. 
 
반면, 오늘 복음은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한 일로 드러났다"(마태 11,19)라고 선언합니다.
진짜 지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최고의 예화가 바로 솔로몬의 재판입니다.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 우깁니다.
솔로몬은 "아이를 반으로 갈라 나누어 주어라"라고 판결합니다.
가짜 어머니는 "내 것도 안 되고 네 것도 안 되게 그냥 나누자"며 동의합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생명이 아니라 '소유'라는 손끝의 욕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어머니는 울부짖습니다.
"아이를 죽이지 마시고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 
 
진짜 어머니는 내 품에 안는 '소유의 행복'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아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생명의 행복', 즉 전체를 살리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녀가 손끝의 욕심을 내려놓고 심장의 사랑을 택했을 때, 지혜로운 왕은 판결합니다.
"저 여자가 진짜 어머니이다." 
 
지혜는 이렇듯 행동으로, 그 결과로 드러납니다. 부분을 포기함으로써 전체를 얻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대림 시기는 우리 영혼의 마취를 풀고 깨어나는 시간입니다.
어떻게 하면 욕망의 감옥에서 벗어나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요?
성 요한 23세 교황님의 일화가 우리에게 그 답을 줍니다. 
 
요한 23세는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교회와 세상의 산적한 문제들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 거대한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가나?" 하는 책임감과 걱정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꿈속에서 천사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요한아, 교회의 주인은 너냐, 아니면 성령이시냐?"
잠에서 깬 교황님은 무릎을 탁 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성령님, 교회의 주인은 당신이십니다.
저는 이제 자러 갑니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자아의 욕망, 내가 해결사라는 '부분적 집착'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대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심장의 평안'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바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는 위대한 봄을 열 수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손끝의 쾌락이 아니라 마음의 행복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내 욕심을 채우려는 현미경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을 찾는 망원경을 들어봅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장터의 피리 소리에 기쁘게 춤추고, 이웃의 아픔에 진심으로 가슴 칠 수 있는
'살아있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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