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1,11-15
모호한 개념은 사랑받지만, 구체적 진리는 폭행을 부른다
엘살바도르의 성인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가난한 이들의 친구였습니다.
그가 강론대에서 서로 사랑하십시오,
평화를 이루십시오라고 추상적인 사랑을 이야기할 때, 독재 정부는 그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듣기 좋은 모호한 사랑 노래에는 관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사랑을 구체적인 정의로 바꾸어 선포한 날, 상황은 변했습니다.
그는 군인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합니다.
사격을 중지하시오! 형제 살인을 멈추시오!"
이것은 모호한 권고가 아니라, 악을 정확히 지목한 명령이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그는 미사를 집전하다가 제대 위에서 암살당했습니다.
추상적인 사랑은 환영받지만, 구체적인 정의는 총알을 부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 나라가 당하는 폭력"의 실체입니다.
진리가 모호할 때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진리가 나를 향해 손가락을 펴고 "바로 당신이 문제다, 지금 멈춰라"고 지목할 때, 세상은 그 입을 막기 위해 폭력을 휘두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두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라고 극찬하십니다.
왜 그토록 칭찬하셨을까요?
바로 뒤이어 나오는 말씀에 그 답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이 말씀은 비난이 아닙니다.
요한이 진리를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냈기에, 어둠 속에 있던 세상이 발작하며 하늘 나라(예수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숨어 계신 하느님을 세상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라고 지목했습니다. 또한 헤로데 왕의 죄를 향해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정확히 찔렀습니다.
요한이 적당히 두리뭉실하게 말했다면 그는 존경받는 원로로 늙어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진리를 구체적으로 지목했기에 그는 감옥에 갇히고 목이 잘리는 폭행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하늘 나라가 세상의 표적이 되도록 만든 요한의 이 거룩한 용기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폭행당하는 운명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셨을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분의 은총로운 말씀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책을 덮으시고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선포하시자 분위기가 돌변했습니다.
즉, "내가 바로 그 메시아다"라고 진리의 실체를 드러내시자, 사람들은 그분을 동네 밖 벼랑까지 끌고 가서 떨어뜨려 죽이려 했습니다.
옛날이야기 속의 메시아는 환영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서서 내 삶의 주권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메시아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드러나는 순간,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의 엘리야 예언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고 했다면 아합 왕과
이제벨 왕비는 그를 죽이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카르멜 산에서 불을 내려 참 하느님을 명확히 증명하고, "바알은 가짜다"라고 악을 지목했을 때, 이제벨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겠다"며 살의를 드러냈습니다.
저의 부끄러운 경험도 그렇습니다.
제가 사제로서 듣기 좋은 위로의 말이나 보편적인 사랑을 이야기할 때는 아무도 저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책을 통해 "우리도 하느님이 되어야 합니다(신화 교리)"라고 가톨릭의 핵심 진리를
선포하고, 삼위일체의 신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했을 때, 거센 반대와 박해가 찾아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말이 너무나 명확하고 구체적이라서, 듣는 이들에게 결단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 말이 너무 모호해서 아무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리는 날선 검과 같아서, 드러나면 반드시 어둠을 찌르게 되고, 찔린 어둠은 비명을 지르며 폭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폭력을 당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저 좋은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는 대림 시기를 맞아 냉담 교우들을 방문하려 합니다.
만약 제가 성당 안에서 "냉담 교우를 위해 기도합시다"라고만 한다면 저는 안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들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형제님, 주님이 기다리십니다.
나오십시오"라고 구체적으로 호소한다면, 저는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욕설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가 당하는 폭행입니다.
하지만 그 폭행을 감수하고 초인종을 누를 때에만, 누군가는 구원됩니다.
초대 교회의 첫 순교자 스테파노를 보십시오. 그가 구약의 역사를 길게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조용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설교의 마지막에 "너희가 바로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인 자들이다!" 라고 죄를 지목하자, 사람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그에게 달려들어 돌을 던졌습니다.
그들은 몰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너무나 명확한 진리가 뼈아팠기에, 귀를 막고 돌을 던진 것입니다.
여러분, 하느님 나라가 폭행을 당하게 하십시오. 점잖게 믿지 마십시오.
세례자 요한처럼 세상의 죄를 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명확하게 선포하십시오.
우리가 세상에서 신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미움을 받는다면 기뻐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가진 신앙이 모호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세상의 어둠을 찌르는 진짜 빛이라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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