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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3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13 조회수 : 47

복음: 마태 17,10-13: “엘리야는 이미 왔으나 알아보지 못하였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변모 사건 직후 제자들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10절). 그들은 메시아 도래 전에 엘리야가 다시 와야 한다는 말라키 예언(말라 3,23-24)을 기억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가리키시며,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12절) 말씀하신다. 이는 곧 하느님의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으나,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 알아보지 못했다는 경고이다.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길을 예비했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해야 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요한은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갖추고 왔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고 멸시하였으니, 이는 그리스도 자신을 거부할 징표였다.”(In Matthaeum Homiliae 57,1) 세례자 요한을 거부한 이스라엘은 결국 메시아를 거부할 준비를 스스로 한 것이었다. 성 예로니모는 “요한은 외모로는 엘리야가 아니지만, 엘리야의 정신과 힘으로 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Commentarium in Matthaeum 2,17) 교부들은 요한을 ‘영적인 엘리야’로 보았으며, 그의 사명은 메시아의 길을 여는 것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주님은 오시기 전에 당신의 길을 준비하도록 엘리야를 보내셨다. 그러나 그 길을 준비하는 사람은 박해를 받았고, 그 길을 걷는 분 역시 박해받으셨다.”(Sermo 293,3) 엘리야적 사명은 언제나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의 계획을 드러내는 길이었다. 
 
교회는 세례자 요한을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이해한다(교리서 719항). 그는 엘리야처럼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하며 메시아의 길을 닦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배척했고, 결국 주님 자신도 같은 운명을 겪으셨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길이 세속적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구원임을 보여준다. 
 
엘리야와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깨어있음과 증언의 소명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느님께 충실한 삶을 살았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티토 2,11-13), 우리는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야 하며, 복된 희망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지금 세상 안에서 ‘작은 엘리야’가 되어,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길을 닦는다면, 그분의 다시 오심은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 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오셨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주님께서도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맞아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받았다(요한 1,12). 우리도 엘리야와 요한처럼, 세상의 무관심과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작은 증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대림의 이 시기는 바로 그분을 알아보고 영접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은총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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