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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15 조회수 : 180

마태오 21,23-27  
 
두렵습니까? 그럼 껴안아 보세요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문득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했던 유명한, 어쩌면 아주 건방져 보이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고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얼핏 들으면 고객을 무시하는 독선적인 말처럼 들립니다.
"너희는 무지하니까 내가 주는 대로 써!"
이런 느낌이지요.
하지만 잡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고객을 무시한 게 아니라, 고객보다 더 치열하게 고객의 삶을 연구하고 파고들었던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두려워서 묻습니다.
"고객님, 이거 좋아하세요? 싫어하세요?" 거절당할까 봐, 안 팔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봅니다.
하지만 잡스는 수천 번의 고민과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욕구까지 이미 다 꿰뚫고 있었습니다.
상대를 너무나 잘 알기에 두려움이 사라진 경지, 그래서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을 실현하려면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혹은 어떤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용기를 줍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구리와 통나무' 이야기 아시지요?
어느 날 연못에 큰 통나무가 '첨벙!' 하고 떨어졌습니다.
그 엄청난 소리와 물보라에 개구리들은 혼비백산하여 물속 깊은 곳으로 숨었습니다. 
 
"아이고,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났다!" 개구리들은 벌벌 떨며 감히 쳐다볼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그런데 용기 있는 개구리 한 마리가 슬금슬금 물 위로 올라와 그 괴물을 툭 건드려 보았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그냥 떠 있는 나무토막일 뿐이었습니다.
실체를 알고 나니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중에는 개구리들이 그 통나무 위에 올라가 일광욕을 즐겼다고 합니다.  
 
통나무는 세상이고 참다원 권위는 그 세상을 만드신 분입니다.
그러니 통나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던진 분을 덜 믿게 됩니다.
그러니 믿음을 키워가는 방법은 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가는 것뿐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지금 통나무를 무서워하는 개구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온 것이냐?"
그들은 답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산합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왜 안 믿었냐고 할 거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군중이 돌을 던질 텐데…' 
 
그들은 군중을 두려워했습니다.
왜일까요? 지아 장처럼 군중 속으로 들어가 부딪혀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군중의 소리보다 하느님의 소리가 더 크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세상이 거대해 보이고, 하느님은 작아 보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 민수기 13장을 보면 이 대비가 더 명확해집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돌아온 10명은 사색이 되어 보고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거인이고, 우리는 그들 보기에 메뚜기 같았습니다!"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비하하는 이 패배감. 이것이 바로 믿음의 부재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없으니, 눈앞의 거인만 보이고 내 뒤의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칼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니 저 거인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차려주신 밥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밥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 앞에서 떨지 않았던 것은, 그가 돌팔매질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너는 칼과 창을 들고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나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아니 하느님의 크기에 비추어 아주 작게 이해할 수 있는 힘입니다. 
 
방사능 연구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마리 퀴리 부인은 당시 사람들이 미지의 물질인 라듐을
두려워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그 무엇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단지 이해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지금은 더 많이 이해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덜 두려워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두려움을 없애고 믿음을 키울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의 유명한 '뱀 공포증 치료 실험'이 그 힌트를 줍니다.
반두라는 뱀을 보면 기절할 정도로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뱀을 던져준 게 아닙니다.
첫 단계는 유리창 너머로 뱀을 보게 합니다.
괜찮으면 다음 단계, 문을 열고 봅니다.
그 다음엔 두꺼운 장갑을 끼고 뱀 꼬리를 살짝 만져봅니다.
이 과정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진행되었는데, 마지막에는 놀랍게도 참가자들이 맨손으로 뱀을 만지며 목에 두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 생각보다 부드럽네요." 
 
이 실험의 핵심은 '작은 직면(Small Steps)'입니다.
두려움을 쪼개서 조금씩 맛보면, 우리 뇌는 "어라? 안전하네?"라고 학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뱀뿐만 아니라 인생의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장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반두라의 실험처럼, 매일 조금씩 하느님께 나를 던져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믿음은 가만히 앉아서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스티브 잡스처럼 고객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이해하게 만듭니다.
믿음은 마리 퀴리처럼 위험 물질을 연구하는 것이고, 다윗처럼 물맷돌 하나 들고 거인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 작은 체험들이 쌓여 우리의 믿음은 거대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이 있다면 피하지 마십시오.
하느님 빽 믿고 딱 한 걸음만, 유리창 너머로 뱀을 보듯 다가가 보십시오.
그림자를 피하면 괴물이 되지만, 믿음을 가지고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면 그곳은 주님과 만나는 성소가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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