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21,28-32: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오늘 복음은 “말로만 믿음”이 아니라, 실천으로 드러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단순히 “주님, 주님!”하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제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참된 믿음임을 가르치신다.
아버지의 부르심에 두 아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생각을 바꾸어 포도밭에 들어간다. 이는 회개한 죄인들을 상징한다. 세리와 창녀처럼 과거에는 죄 속에 살았지만, 결국 회개하여 정의의 삶으로 나아가는 이들이다. 둘째 아들은 말로는 순종했으나, 실천하지 않았다. 이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느님을 공경했지만, 실제로는 그분의 뜻을 거부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31절) 이는 단순히 죄인의 구원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 없는 의인 흉내를 가장 날카롭게 꾸짖으신 말씀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해설한다. “행하지 않는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버지의 뜻은 말로가 아니라, 삶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Hom. in Matth. 68,1) 그는 이 비유가 단순히 “누가 더 나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참된 순종은 실제적 행위에서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처음 모습’이 아니라 ‘마지막 모습’을 보신다. 과거에 무엇이었는가가 아니라, 마지막에 무엇이 되는가가 중요하다.”(Sermon 67) 이는 회개한 죄인에게 열려 있는 희망의 문을 밝히 드러낸다. 오리게네스는 이 비유를 교회 전체의 사명으로 확장한다. “포도밭은 세상이며, 아버지의 부르심은 모든 사람을 향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은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에서 드러난다.”(Comm. in Matth. XIII, 18)
우리도 종종 둘째 아들처럼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면서 실제로는 행하지 않을 때가 많다. 신앙은 입술의 고백에 그치지 않고, 삶의 선택과 행동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대림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의 약속을 말로만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조금 부족할지라도, 선행으로 세상에 나아가기를 바라신다. 교회는 완전한 이들의 집합이 아니라, 회개한 죄인들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과거 잘못에 머무르지 말고, 지금, 이 순간부터 하느님의 포도밭에 들어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의 나라는 세리와 창녀들에게도 열려 있다. 중요한 것은 처음이 아니라 끝,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대림의 기다림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포도밭에 들어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삶으로 구체화하여야 한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가 모두 겸손히 회개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기를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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