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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16 조회수 : 181

마태오 21,28-32 
 
기도 없이 할 수 있는 사명은 없다 
 
 
찬미 예수님!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단편 소설 『세르기 신부』에는 아주 충격적인 반전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 세르기는 본래 전도유망한 귀족 청교도였는데, 약혼녀의 배신에 큰 충격을 받고 수도자가 됩니다.
그는 엄청난 고행과 기적을 행하며 사람들로부터 '살아있는 성인'으로 추앙받습니다.
수많은 순례자가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지요. 겉으로 보기에 그는 완벽한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정욕과 명예욕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사람들 앞에서의 명성 때문에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타락하고 수도원을 도망칩니다.
갈 곳 잃은 그가 찾아간 곳은 어릴 적 친구였던 '파센카'였습니다. 
 
파센카는 아주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녀는 병든 남편과 까다로운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허리가 휘어질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가족을
사랑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쭈글쭈글한 손을 보며 세르기는 무릎을 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오직 내 이름을 위해 하느님의 일을 하는 척했을 뿐이다.
하지만 파센카, 너야말로 하느님과 깊이 연결된 채 진짜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었구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아주 쓴소리를 하십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이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꾸중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명(Mission)'과 '에너지(Energy)'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세례자 요한을 '회개를 외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명'을 알려주는 존재입니다.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너는 저 길로 가야 한다"라고 목적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지요. 
 
유다 지도자들도, 세리와 창녀들도 모두 요한을 만났습니다.
즉,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사명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공부해라"라고 사명을 주었다면, 그다음엔 무엇을 줘야 합니까?
네, "밥"을 줘야 합니다.
밥을 먹여야 공부할 힘이 생기니까요.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요한을 통해 우리에게 "일하러 가라"는 사명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일을 해낼 '성령의 에너지'를 주십니다. 
 
수석 사제들의 치명적인 실수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직함도 있었고, 지식도 있었고, 성전이라는 일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도와주십시오"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즉, '주유'를 하지 않은 채 자기 힘으로 엑셀만 밟아댄 것입니다.
그러니 겉모습은 화려한 고급 세단인데, 엔진은 꺼져 있는 상태였던 겁니다. 
 
반면 세리와 창녀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명령(사명)을 듣자마자 깨달았습니다.
"아, 내 힘으로는 저렇게 살 수 없구나.
내 연료통은 텅 비었구나."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사명을 수행할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지금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냉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 없이 내 힘으로 하고 있는 그 일은, 사명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사명이라는 이름표만 달고 실제로는 내 욕심을 채우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심해 잠수부 이야기를 아시는지요? 깊은 바닷속에서 보물을 건져 올리는 사명을 띤 잠수부가 있습니다.
수압이 엄청난 그곳에서 잠수부가 살아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물 위 배와 연결된 가느다란 '산소 호스'뿐입니다.
잠수부가 "나 이제 일하는 요령 좀 알았어. 이 호스는 거추장스러우니까 끊고 내 마음대로 할래!"라며 호스를 자르는 순간, 그는 사명은커녕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심해에서 하느님의 일(보물)을 하려면, 끊임없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산소, 즉 성령의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공물(Tribute)이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 마셔야 하는 산소입니다. 
 
교회 역사를 빛낸 위대한 성인들은 하나같이 이 '산소 호스'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수녀원에 들어간 후 초기 20년 동안을 '평범한 수녀'로 살았습니다.
겉으로는 수도자라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기도 시간보다 손님 접견실에서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훗날 그녀는 자서전에서 이 시기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것은 하느님도 즐기려 하고 세상도 즐기려 했던 비참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20년 동안 헛발질만 했습니다."
그녀가 '에체 호모(Ecce Homo)', 즉 고난받으시는 예수님의 상 앞에서 눈물로 회심하고 '기도의 성'으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그녀의 진짜 사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사명은 '가장 비참한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체력으로는 불가능한 중노동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고름이 흐르는 환자를 닦아주는 수녀님을 보고 코를 막으며 물었습니다.
"수녀님, 저는 백만 불을 줘도 이 짓은 못 하겠습니다. 어떻게 견디십니까?"
그러자 데레사 수녀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기자 양반, 저도 못 합니다.
백만 불을 줘도 안 합니다.
제 힘으로는 단 1시간도 못 버팁니다."
그녀는 매일 새벽, 미사와 성체조배를 하지 않고는 절대 빈민가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제 생명줄입니다. 주유하지 않으면 저는 멈춰버린 낡은 차일 뿐입니다." 
 
아시아 선교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은 또 어떻습니까?
인도와 일본, 중국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거대한 사명 앞에서, 그는 하루에 수천 명에게 세례를 주느라 팔이 마비되어 들어 올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말도 안 통하고 풍토병에 시달리는 극한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밤마다 감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습니다.
"주님, 더 이상은 못 합니다.
제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그는 동료에게 쓴 편지에서 "내 육체의 힘이 다했을 때, 비로소 하느님의 힘이 내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 일터로 나가시기 전에, 설거지를 시작하시기 전에 단 1분이라도 '산소 호스'를 점검하십시오.
"주님, 요한이 알려준 사명을 감당하려 합니다. 하지만 제겐 힘이 없습니다.
당신의 에너지를 채워주십시오." 
 
기도하지 않고 행하는 일은 위험한 질주입니다. 하지만 기도로 에너지를 채우고 나가는 그 길은,
세리와 창녀들처럼 가장 먼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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