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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17 조회수 : 166

모태가 성숙하면 신랑이 나타난다 
 
 
찬미 예수님!
오늘은 영화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2021년에 개봉한 '팔머(Palmer)'라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에디 팔머는 고교 시절 풋볼 스타였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다녀온
전과자입니다.
그가 출소해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은 차가운 감옥보다 더 혹독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거절당하는 일자리... 그는 그저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버티는 '희망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인생에 불청객이 하나 끼어듭니다. 옆집에 사는 소년 '샘'입니다.
마약 중독자 엄마가 아이를 버리고 도망가버린 후 홀로 남겨진 아이였지요.
그런데 이 샘이라는 녀석이 좀 독특합니다.
남자아이인데 공주 인형을 좋아하고 머리에 예쁜 꽃핀을 꽂고 다닙니다.
세상은 그런 샘을 '별종'이라 부르며 손가락질했습니다. 
 
팔머는 처음엔 귀찮았습니다.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처지에 웬 혹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갈 곳 없는 샘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밥을 먹이고 재워주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팔머에게 아주 '불편한 순종'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샘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자, 팔머는 샘의 담임 선생님인 '매기'를 찾아갑니다.
"선생님, 애들이 샘을 놀려요.
샘은 그냥... 샘일 뿐인데요." 
 
매기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거친 전과자인 줄만 알았던 팔머의 눈에서,
한 아이를 지키려는 간절한 '아버지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핼러윈 파티 날이었습니다.
샘이 기어코 공주 복장을 하고 파티에 가고 싶어 하자, 팔머는 자신의 남은 자존심을 다 버립니다. 사람들의 비웃음을 감수하고 샘의 손을 잡고 파티장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갑니다.
그 순간, 늘 겁에 질려 있던 샘은 당당한 '사랑받는 아이'로 다시 태어납니다.
팔머가 세상의 편견을 막아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은 그다음에 일어납니다.
샘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팔머의 모습을 보며, 매기 선생님의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그녀는 팔머의 과거(전과자)가 아니라, 현재의 사랑(희생)을 보았습니다.
매기는 팔머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에디."
평생 "실패자", "범죄자"라는 소리만 듣던 팔머에게, 매기의 사랑은 구원과도 같았습니다.
만약 팔머가 샘을 귀찮다고 쫓아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여전히 외톨이 전과자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샘이라는 작은 생명을 품고 살려내자, 그 보상처럼 '매기'라는 사랑이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강론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팔머에게 매기 선생님은 곧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과 같습니다.
우리가 껄끄러운 이웃(샘)을 순종으로 받아들여 그를 살려낼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매기)과
사랑에 빠질 자격을 얻게 됩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은 자에게만 찾아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주 길게 나열합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남자가 "누구는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를 반복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족보의 끝에서 문법이 바뀝니다. 요셉이 예수님을 낳았다고 하지 않고,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라고 수동태로 기록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구원의 역사는 내가 무언가를 쟁취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나를 비우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누군가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영적 모태가 되어줄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리아처럼 순종할 때, 우리 안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이웃을 순종으로 섬길 때, 그 이웃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마니피캇’으로 주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성경 속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보십시오. 천사의 예고를 들은 마리아는 곧바로 늙은 친척
엘리사벳을 도우러 산골로 달려갑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이자 봉사였습니다.
마리아가 도착해서 인사를 건네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엘리사벳 태중의 아이(세례자 요한)가 기뻐 뛰놀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찹니다. 마리아의 방문(순종)이 엘리사벳 모자를
영적으로 깨운 것입니다.
일종의 영적 출산이지요. 엘리사벳 역시 태중의 요한을 하느님의 뜻대로 품어 기르고 있었기에, 성모님을 통해 오시는 그리스도를 단번에 알아보고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항상 하느님을 만나는 방식은 이런 식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막연히 기다리는 자에게 오시지 않습니다.
영화 속 팔머가 샘을 받아들였을 때 매기를 만났듯이, 우리가 누군가를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십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하나니아스를 기억하십니까? 어느 날 주님께서 그에게 황당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가서 사울이라는 자에게 안수를 주어라." 사울이 누구입니까?
신자들을 잡아죽이던 공포의 대상, 원수였습니다. 하나니아스는 두려웠지만 "가라, 그는 나의 그릇이다"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를 찾아갑니다. 하나니아스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사울 형제"라고 불렀을 때,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며 그가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순종을 통해 하나니아스는 무엇을 얻었습니까?
그는 단순히 한 인간의 눈병을 고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가 탄생하는 하느님의 역사를 목격했고, 그 현장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권능을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가 순종하지 않았다면 위대한 바오로는 없었을 것이고, 하나니아스의 하느님 체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샘'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눈을 뜨게 해주어야 할 '사울'은 누구입니까?
내 고집을 꺾고 불편한 이웃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가 기 죽지 않도록 팔머처럼 손을 잡아주십시오.
여러분의 순종으로 누군가가 웃게 되고, 누군가가 신앙의 눈을 뜨게 될 때, 바로 그 자리에 성탄의 예수님께서 와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가 다시 태어날 따뜻한 구유가 되어줄 때, 그를 태어나게 하시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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