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20,2-8: “그는 보고 믿었다.”
1. 순교와 사랑의 증거
교회는 성탄의 기쁨을 지낸 직후, 먼저 순교로 그리스도를 증거한 스테파노 성인을 기리고, 이어서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한 요한 사도를 기념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증거가 “피 흘림, 순교”와 “사랑의 삶”이라는 두 기둥 위에 세워져 있음을 드러낸다. 요한은 마지막까지 예수님 곁에 남았던 제자로서, 일생을 통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8)라는 복음을 증거한 사도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요한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도들 가운데, 주님은 특별히 요한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이는 요한만을 사랑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사랑의 표징을 맡기신 것이다.”(In Iohannis Evangelium Tractatus 124,5) 즉 요한은 단순히 “사랑받은 제자”가 아니라, 사랑을 전하는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2. 베드로와 요한: 권위와 사랑의 조화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달려갔지만,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베드로를 먼저 들여보낸다. 이는 교회의 수위권을 지닌 베드로의 위치를 존중하는 모습이다. 사랑(요한)과 권위(베드로)는 대립하지 않고, 함께 부활 신앙을 증거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묵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요한은 사랑으로 앞섰고, 베드로는 권위로 앞섰다. 교회는 사랑과 권위가 함께 걸어갈 때 흔들리지 않는다.”(Homiliae in Ioannem, 85) 이처럼 교회는 사랑의 불꽃과 권위의 기둥 위에 서 있으며, 둘은 서로를 보완합니다.
3. 수건이 벗겨진 얼굴: 하느님의 영광을 본 요한
무덤 안에는 수의가 흩어져 있었고, 머리를 감쌌던 수건은 따로 개켜져 있었다. 이는 단순한 부활의 흔적이 아니다. 구약에서 모세가 하느님을 뵌 뒤 얼굴을 수건으로 가려야 했던 것처럼(탈출 34,33-35),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로 수건은 벗겨지고,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뵐 수 있게 되었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아무도 하느님을 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본다. 그리스도를 본 이는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6,6) 요한은 바로 이 신비를 누구보다 깊이 체험한 사도였다.
4. 친교와 사랑의 삶
요한은 단순히 자신만이 주님과 친교를 누린 것이 아니라, 그 친교가 모든 신자에게 열려 있음을 선포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친교는 아버지와 그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입니다.”(1요한 1,3) 성 암브로시오는 이를 해석하며 말한다. “요한은 은총의 사도였다. 그는 먼저 사랑을 체험했고, 그 사랑을 교회 전체에 흘려보냈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1,23) 따라서 요한의 증거는 사랑의 친교를 확장하는 사명이었다.
맺음말
성 요한 사도의 축일은 우리에게 깊은 도전을 하게 한다. 우리는 신앙을 피 흘림으로 증거할 수도 있고, 일상에서 사랑의 삶으로 증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우리는 기도하자. “주님, 요한처럼 사랑으로 당신을 따르며, 형제자매들과 친교 안에 살게 하소서. 베드로처럼 교회를 지탱하는 충실한 믿음을 지니게 하소서. 부활의 영광을 믿고, 그것을 세상에 증거하는 참된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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