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2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31 조회수 : 116

요한 1,1-18 
 
2025년, 당신은 빛이었습니까, 등불이었습니까? 
 
 
찬미 예수님!
어느덧 2025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저는 여러분께 냄새나는 생선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은 자신을 인간을 넘어선 신, 곧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거부하며 불로초를 찾았고, 자신의 무덤 지하에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 천장의 별자리를 보석으로 박아 영원한 빛의 제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스스로 빛이 되려 했던 욕망의 끝판왕이었지요. 
 
그의 최후는 어땠을까요?
그는 순행 중에 객사했습니다.
한여름이라 시신은 금방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환관 조고는 황제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시신이 실린 수레 앞뒤에 절인 생선, 즉 썩은 생선을 가득 실어 시체 썩는 냄새를 생선 비린내로 덮어야 했습니다.
영원히 빛나려 했던 신의 육신은 썩은 생선 더미 속에 숨겨져 옮겨졌습니다. 
 
이와 비슷한 인물이 성경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 12장의 헤로데 아그리파 1세입니다.
어느 날 그가 은으로 짠 눈부신 옷을 입고 연설하자, 아침 햇살을 받아 옷이 번쩍였고 아첨꾼들은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신의 목소리다!"
헤로데는 이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고, 마치 자신이 진짜 빛인 양 으스대며 즐겼습니다.
그 즉시 주님의 천사가 그를 쳤고, 그는 구더기들에게 먹혀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스스로 신이 되려던 몸은 가장 하찮은 벌레의 밥이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인간은,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빛을 받아 반사하는 '반사체'로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전구가 필라멘트를 태워 스스로 빛이 되려 하면 결국 끊어지고 타버립니다.
마지막에 웃으려면, 내가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빛이신 분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요한 세례자는 이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요한에게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를 메시아로 착각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요한은 시대의 등불 행세를 하며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 빛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즉 형체 없는 도구로 낮추고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며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가 스스로 빛이 되기를 거부했기에, 예수님은 그를 "여자가 낳은 이들 중에 가장 큰 인물"이라며 진짜 별처럼 높여주셨습니다.
만들어진 존재가 좋은 마지막을 맞이하려면, 만드신 분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전하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아폴로 13'의 실화를 기억하십니까?
우주선 고장으로 궤도를 잃은 아폴로 13호의 비행사들은 지구로 돌아오는 길을 찾기 위해 창밖의 별자리를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주선 안에서 켜둔 계기판 불빛들과 떠다니는 잔해들이 반짝거려 밖의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길을 찾기 위해 우주선의 모든 전원을 껐습니다.
내부가 춥고 캄캄해지자, 비로소 창밖으로 그들을 인도할 진짜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내 빛을 끌 때 별들이 보이고 갈 길이 보입니다.  
 
지난 1년, 우리는 내가 이룬 성취, 내 자존심, 내 계획이라는 불빛을 너무 밝게 켜놓고 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정작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별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오늘 밤, 나의 빛을 끄십시오.
그리고 먼저 참 빛을 바라보고 그 빛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십시오.
그러면 내년 이맘때, 우리는 훨씬 더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올 한 해를 돌아봅니다.
'하.사.시.' 연구 모임을 만들고, 번역을 하고, 책을 내고, 강의를 다녔습니다.
많은 냉담 교우들이 다시 성당에 나오는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스피커였고, 몽당연필이었습니다.
제가 사라지고 오직 제가 증언한 주님만이 남는다면, 그것으로 제 한 해 농사는 대성공입니다.  
 
마지막으로 루르드의 성녀 베르나데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성모님을 18번이나 만난 기적의 주인공이었지만, 수녀원에 들어가 평생 궂은 일만 했습니다.
한 수녀가 "당신은 기적의 증인인데 왜 이렇게 숨어 지냅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답했습니다.
"저는 빗자루입니다.
성모님은 청소할 때 저를 쓰셨고, 일이 끝나면 문 뒤에 세워두셨습니다.
빗자루가 스스로 나서면 안 되지요." 
 
그녀는 빛을 반사한 뒤 철저히 그림자 속으로, 문 뒤로 숨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스스로 태양이라 칭했던 진시황과 헤로데는 썩어 문드러졌지만, 스스로 빗자루라 칭했던 베르나데트의 시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썩지 않고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빛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2025년은 빛이 되려는 해였습니까, 아니면 빛을 전하는 해였습니까?
새해에는 내가 빛나려 하지 말고, 주님의 빛을 세상에 반사하는 맑은 거울이 됩시다.
내가 작아질수록, 내 안의 하느님은 커지십니다. 창조자가 아닌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
내년 이맘 때는 스스로 타오른 재가 아닌, 빛을 머금은 별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